얼마 전 히피펌을 했다. 스타일링을 마음먹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애정하는 김고은 배우 느낌을 따라 하려는 무리수를 둔 건 아니다. 40대가 된 지금도 무분별한 도전이 불가한 꾸밈 영역이 존재하는데 다름 아닌 헤어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장시간 앉아있기 힘든 미용실에 영혼과 비용을 들여 스타일링에 변화 주는 일이 결코 신나지 않는 나는 n년차 미용실 유목민이다.
채도 높은 흑발에 모발이 두껍고, 숱이 사자갈기처럼 풍성하여 머리를 풀고 다닌 게 인생 총량에서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윤건의 '갈색머리'에서 형용하던 찰랑거리는 브라운 모발을 넋 놓고 부러워하던 시절을 지나, 오직 머리 감는 시간을 줄이려 철저히 커트(와 뿌염) 위주의 삶을 산다. 가끔 남편보다 외출 준비를 빨리 끝낸 후 유유자적할 때마다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기도 하며.
공들여 세팅펌을 한 뒤 "최소 이틀은 묶지 마세요. 자국 나고 금방 풀릴 거예요" 같은 당부를 새기지만 사자 갈기마냥 부스스한 모양새를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견디기 어려워 슬그머니 묶으며 인고의 시간에 거듭 굴복한다. 그럴 거면 대체 머리는 왜 한 걸까 싶은 내적 의구심이 차오를 때면 주변에서도 슬슬 고개를 내젓는 눈치다. 알면서도 반복하는 나를 차마 이해해 달라고 설득할 재간은 없으며 업데이트를 놓지 않는 자의 삶은 자주 이율배반적이다.
손님 그거 고데기인데요" 와 같은 팩폭에도 단 하루의 고데기로 살고 싶다면야..
엄선한 캡처 사진을 수줍게 꺼내 보이며 풀리기 직전의 내추럴함을 원한다는 소회를 밝혀도 간곡한 청을 흔쾌히 수락한 디자이너는 아쉽게도 없었다. 머쓱한 시선을 겨우 잡지에 고정하며 어서 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심경으로 버텨내고는 한다.
각설하고 아무튼 히피펌이란 그간 고수해온 한 듯 안한 듯 펌과 거리가 있는 도전 임은 분명하다. 히피(hippie)는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을 주체로 시작된,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뜻하는데 더 정확히는 물질문명에 항거하는 젊은이 그룹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나는 사회가 규정하는 청년층에 속하는 걸까.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층 상한선을 40대로 확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해도 34세 부로 진작에 종결된 청년존에 재입성한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해보인다. 통용되는 청년의 생물학적인 나이에서는 아무래도 멀어졌으나 사회적으로 어느때보다 활발히 고군분투하는 시기를 관통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특히 기혼 여성은 양육과 가사의 굴레에 매일 묵직하게 압도돼 있고, 아이가 어릴 때는 생활 반경에 밀착하여 돌보는 일 또한 필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워킹맘의 경우 가사로부터 얼마간의 해방 측면에서 일시적 자유가 허용되나 가정 안팎의 이중고를 견디며 서서히 탈진할 수 있는 범사회적 고충을 갖는 점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행하기에 유효한 시기란 반드시 고정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앞선 세대가 지닌 통념과 가치관에 무조건 순응하며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 편이다. 그 대신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기억해 내는 일을 조명한다.
과거의 나에서 연유하여 본래 추구해 온 유무형의 것들을 가급적 잊지 않으며 실행가능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을 지향한다.
히피는 될 수 없더라도 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자연회귀적 정신을 기리며 히피펌을 시도하는 나날은 계속되기를 바란다. 머물러 고여있거나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고 실패해가며 나를 빚어가는 일에 겁내지 않을 오늘의 나를 지지한다.
사진: Unsplash@FoadRos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