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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Sep 30. 2023

9월에 듣는 캐롤

각자도생의 브금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뜨거운 한낮의 여름 바다는 떠올린 적이 없을 만큼, 여름이란 계절을 의식적으로 망각하며 지낸다. 폭염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곁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계절은 성큼 한발 앞을 내딛는다.

 

 왜 유독 피하고 싶은 시절은 여름일까. 찌는 듯한 무더위와 습도를 잊을 정도의 역동적인 계절적 취미를 태생적으로 즐기지 못하는 탓에 더위를 피해 에어컨 풀가동하는 실내만 배회하는 이 계절의 나는 무력감과 일시적 뽀송함으로부터 여러 날 자유롭지 못하다.

날씨 앞에 번번이 굴복하는 모양새가 주는 묘한 패배감 같은 것이랄까.걸어서 환장속으로의 시절이 부디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남은 여름의 끝자락을 더욱 힘껏 텅 비우며 지낸다.



 

 하지만 소진하는 마음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 시기 나름의 특효약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캐롤 듣기인데 말복을 지나 8월 끝자락을 향해 갈 무렵 궁극의 쿨링 선곡병(feat.캐롤)이 슬슬 도지기 시작한다. 캐롤은 단순히 청량감을 주는 노래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서서히 빙하기로 소환하는 확실한 효력이 있다.


 끝이 날듯 말 듯 하면서도 가시지 않는 더위에 지칠  때쯤이면 남은 한낮의 여름을 가까스로 보낼 수 있는 그 밖의 동력이 필요하다. 극심한 폭염을 버티고 이제 다 끝났겠지 싶은 더위는 그 후 얼마간 곁에서  더 맴돌다 간다.


 이 계절에 듣는 캐롤은 영롱한 불꽃놀이 같다.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조우한 친구 같기도,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을 통해 발견한 뜻밖의 루틴이 되기도 한다. 두 계절을 앞서 듣기 시작한 탓에 정작 12월이 되면, 캐롤 효과가 짜게 식어버리는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무계획형 인간이 부지런해지는 몇 안 되는 지점인 것은 확실하다.


 하나 둘 꺼내 입던 긴소매 두어 벌로 족히 넉넉하던 뜨거운 구월이 저문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처럼 들쑥날쑥한 모양을 견디며 애써 나를 맞추던 일들을 이제는 접어두려고 한다.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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