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치려다 옷을 고치는 일
바야흐로 트렌치코트의 계절이다. 회사를 그만둔 후로는 트렌치코트가 아무래도 손이 덜가는 옷장 붙박이템으로 전락했지만 제철을 피우지 못하고 내내 풀 죽어 있는 처연한 모양새에 마음이 동해 옷장 한 구석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본다.
구입 시기는 아마 올해 늦봄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초록의 싱그러운 오월을 맞이하기 전, 사월이 슬그머니 저물어 가던 때. 평일 하루 중 외투가 필요한 시간이라고는 아침, 저녁의 출퇴근길 그리고 점심 식사행 정도가 고작이던 단출한 시기였다.
건물 지하의 구내식당이 영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점심은 주로 맞은편 상가 건물의 식당에서 먹었는데 식권을 다량 구매해 두다 보니 꾸역꾸역 의무감에 식당으로 향하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사무실을 벗어난 자체로 누리는 해방감이 덩달아 따르니 머리와 발걸음은 서로를 속박하려는 기세 없이 각기 동작하기에 바빴다.
아무튼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거리는 굉장히 짧았는데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건물 사면마다 있어 정오의 햇살을 맞으며 밖을 좀 더 거닐고 싶다면 가장 먼 입구를 택하는 방법도 있었다. 늦은 사월을 통과하던 때 내게 외투라는 존재는 그리 짧은 구간을 거닐 때에도 팔에 걸치고 걷게 되는 잉여의 짐으로 여겨지는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트렌치코트는 각종 외투를 통틀어 가장 전무후무한 클래식 아이템이 아니겠는가. 반짝 며칠 입었을 뿐인데 어느새 허무하게 봄이 가버려도 가을에 마땅하게 꺼내어 입을 수 있으니 실은 구매 시기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유행 주기로부터 제법 안전하면서도 핏, 길이, 소매나 카라 깃에 약간의 변주를 더해 트렌치 만의 심상한 느낌을 비껴갈 수 있다면, 천천히 그리고 새롭게 즐기기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실은 모든 구매 앞에서 내가 망설이는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닌 적정 시기에 관한 것이다. '알맞고 바른 정도'인 적정의 사전적 의미를 헤아리지 못해 갈피를 놓치며 몇 걸음 느린 템포로 겨우 물건을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세에 섣부르게 동화되는 편은 아니나 타고난 특유의 협응력 덕분인지 서서히 안팎으로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기세에 타협하여 하나 둘 취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물건도 유기적이다 보니 손수 잊혀지거나 불가피하게 외면하는 때를 고려해야 하는 걸,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느낄 때면 부쩍 크게 느낀다.
늦은 봄에 충동 구매했다가 그대로 잊힐 뻔한 외투를 데리고 동네 수선집으로 향했다. 오버핏과 긴 소매가 맘에 들어 구입했지만, 제철에 꺼내 입어 보니 처음 느낌 그대로의 매무새가 아니다.
전체 핏을 수정하기엔 수선 비용이 구매가를 초과해 버릴 것만 같아 아쉬운 대로 소매 단만 줄여 입기로 했다.
한 단 대충 접어 입어도 무방할 옷에 괜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소매가 길어 불편해 못 입겠다는 자책도 잠재울 겸, 지난날 헛된 선택도 메워볼 겸 꾸역꾸역 번거로움을 감행한다.
새 입김을 불어넣고 새 옷이 될 헌 옷과 다시금 새 날을 건널 수 있다고.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