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30대 중반 아저씨의 결혼에 대한 생각

by Josh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러다 국가가 소멸한다”는 말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나는 지구 반대편쯤 있는 탄자니아에서 그런 뉴스를 보면서, ‘아 그래? 다들 결혼 안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내 주위의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했고, 아이도 둘, 셋씩 낳아 잘만 키우고 있으니까.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친구들이 가족사진을 프로필로 걸고, 아이 생일 파티 사진을 올리고, “둘째가 안 자네”, “셋째는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사고를 치고 있더라” 같은 얘기를 하고 산다. 아이가 있는 친구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며 "부럽다"고 말한다. 나도 가끔 그랬으니까. 그래서 가끔 헷갈린다. 이 사회가 정말 결혼을 안 해서 문제인 건지, 아니면 내가 사는 세상이 뉴스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건지.

그렇게 나도 요즘 결혼이란 것에 조금 관심이 생기긴 했다. 뭐랄까, 관심이라기보단 주변에서 다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이상한 사람 되는 건가 싶은 그 묘한 감정. 그런데 그 감정이 순수한 개인적 욕망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걸 나 스스로 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이건 심각한 사회적 통찰이나 고결한 개인철학 따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사람 구실 못하는 거 아닌가’ 같은 조용한 압박감 같은 것이다.

누가 나에게 ‘언제 결혼해?’라고 지속적으로 물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먼저 쫓기는 느낌. 나는 이런 태도가 별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항상 논리대로만 움직이진 않는다. 나도 스스로에게 좀 자조 섞인 웃음을 날렸다. 이렇게까지 남을 의식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문제만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흔들린다고나 할까.

여기에서 또 몇 가지의 문제는 나는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갖는 데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가 내 몸에서 나오나? 아니거든.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출산이란 건 결국 내 배우자의 몸을 쓰는 일이고, 내가 겪지 않을 고통을 상대가 겪어야 한다. 손을 부여잡고 여보 고마워 따위의 말을 한다고 이해되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그저 '사람 구실 못하는 거 아닌가' 따위의 압박감이나 욕망 따위로 누군가에게 엄청난 신체적이자 사회적이자 정신적인 부담을 지우는데에서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크다.

두 번째 이유는 내 자신의 예민 포인트다. 사실 늘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나는 내가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름을 받아 불리며 살았고, 내가 원한 적 없는 세계와 마주하며 살면서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아픔을 느꼈다.

뭐랄까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탄생이라는 게 나에겐 조금은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똑같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이 두렵다.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진 아름다운 행위이자 세상을 이어가게 해주는 필수불가결한 행위겠지만 나에게는 동시에 너무나 큰 책임과 두려움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누군가가 내가 낳겠다는 욕심 때문에 세상에 불려 나와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결정을 못 하겠다. 여기에서 또 자연스러운 질문이 따라온다. 아이를 갖지 않을 거면, 굳이 결혼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연애하면서 동거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굳이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기 위해 국가에 보고를 하고, 서류를 내고, 등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이게 바로 요즘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질문들이다. 한국식 결혼이란 건 결국 국가와 사회에 ‘저희 둘이 이제 공식적으로 같이 삽니다!’라고 서류를 제출하는 일 같은데, 생각해 보면 이게 참 이상한 행동이다. 사랑이라는 아주 사적인 감정이 어느 순간 공적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만 사회적 효력을 갖게 되는 순간, 그게 결혼이다. 왜 가족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서류를 내야 하는지, 도대체 어디부터 국가가 개입할 권한이 생긴 것인지 나는 좀 의문이 생긴다. 나는 이 구조가 꽤 어떤 면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고도 느낀다. 뭐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정성은 현실적으로 크다. 병원 보호자 서류, 주거, 재산, 계약, 보험, 법적 책임 등등 이런 것들이 사실 결혼이 있으면 훨씬 편해진다. 삶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결국 나는 이런 "안정성"을 원하는 건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거 같은 건가? 구분이 안된다. 뭐지 대체 결혼이란 건.

결혼에 대해 물으면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은 서로를 지켜주는 제도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장치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약속이다.” 맞다. 다 맞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반문하게 된다. 그게 정말 ‘제도’가 있어야 지켜지는 건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제도 없이도 서로를 지키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걸 결혼과 다르게 분류해야 하나? 국가가 인정해 주면 사랑이고, 인정 안 하면 사랑이 덜 진짜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자꾸 해버린다.

우리 부모세대에서는 결혼은 당연히 하는 것이자 생활규칙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삶을 사는 이들의 데이터가 너무나 부족하고, 데이터가 없음에서 오는 예측 불가능함에서 느껴지는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는 결혼 안 한 사람들, 자녀를 갖지 않은 우리 윗세대의 데이터가 현저히 부족하다. 또 결혼을 고민할 때 결국 난 관계의 형태를 고민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살고, 어떤 약속을 공유하며 살아갈지. 결혼은 이 약속을 공식화하는 방식의 하나고, 동거나 기타 다른 형태의 것들은 비공식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일 뿐이겠지.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어렵다. 그저 사람들이 만든 다른 형태일 뿐이니까.

탄자니아에서 살다 보면 이 결혼 문제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여기 사람들은 결혼식이 삶의 중요한 이벤트이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법적 등록’에 목숨 걸지 않는다. 가족이 모이고, 친구들이 와서 춤추고, 누가 축사를 하고, 누가 소고기를 삶아오고, 누가 밥을 하고, 그런 공동체적 행위가 핵심이다. 법적 등록은 부록 같은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는 것이지, 국가가 도장을 찍어주는 데서 결정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서 ‘결혼이라는 게 꼭 서류로 증명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뭐 나도 당연히 누군가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건 결혼을 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제도적 결합이 그 감정을 더 강화시키느냐? 난 모르겠다. 오히려 그 제도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이란 이름이 주는 무게 때문에 관계가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 제도는 언제나 관계에 규칙과 틀을 부여한다. 그리고 나는 그 틀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사랑은 자유에서 시작하는데, 결혼은 그 자유를 구조화하는 일이다. 그 구조화가 서로에게 안정감을 줄 때는 좋지만, 그 구조화가 서로를 숨 막히게 할 때도 있다. 결국 나는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사랑의 형태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싶은가?

결혼이든, 동거든, 혹은 제도 없는 비공식적 결합이든, 중요한 건 둘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이다. 결혼이 정답도 아니고, 비혼이 정답도 아니고, 출산이 정답도 아니고, 무자녀가 정답도 아니다. 혼란스러운 건 우리 사회가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정답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제시해서다. 사회는 늘 이렇게 말한다. “결혼은 해야지.” “아이도 낳아야지.” “부모님도 기대하시잖아.” 그런데 여기에 내 의견은 없다. 나의 삶인데, 내가 없는 결론이 너무 많다. 결혼이라는 건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한다. 내가 만든 이유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방식으로. 남들 다 한다고 내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 안 한다고 나도 안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나는 왜 이 선택을 하는가?’다. 이 질문 없이 들어가는 결혼은, 나중에 무너질 때도 이유를 알기 어렵다.

사랑은 형태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떤 제도를 선택하든, 어떤 형태로 살든, 결국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마음이 있다면 결혼이든 동거든 방법은 부차적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없다면 제도가 있어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 나는 아직 결혼에 대해 확신이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아이를 갖든 갖지 않든, 나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내가 세상과 부딪히며 느꼈던 그 서늘한 감정들, 그걸 내가 누군가에게 반복시키고 싶지 않다. 이 마음만은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마 좀 더 오래 고민할 것이다. 뭐 언젠가 난 결혼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결혼이 ‘남들 다 하니까’라는 이유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 문제는,,, 글쎄, 큰 변화가 없는 한 내 결론은 아마 계속 지금과 같을 것이다. 뭐 배우자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노력이야 하겠지...?

오늘도 주절주절.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네.

결혼하기 싫어? 네.

왜? 나도 모르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대혐오의 시대, 필요한 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