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혐오의 시대, 필요한 건 사랑

Love wins all

by Josh

Love wins all. 내가 최근에 아주 좋아하는 가수이자 배우 아이유의 노래다. 참 멋진 제목이다. Love wins all.

사랑이 모든 걸 이긴다니,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 대책 없는 선언인가. 얼핏 보면 허무맹랑한 주문 같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말이 가장 현실적인 문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대혐오의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들도, 지나치게 바쁜 사람들도, 심지어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조차 아주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 마치 이 시대의 기본 장착 옵션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 알람을 끄기도 전에 오늘의 혐오 메뉴가 추천된다. 알고리즘은 친절하게 당신이 어제 분노했던 유형의 사람들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다며 확인해 주고, 누군가가 이슈 하나만 던지면 그 밑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는데, 거의 대부분이 저놈을 죽여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싫다도 요즘 표현 기준으로는 너무 점잖다. 혐오 표현 업계에서 싫다는 거의 인사 수준이다.

사람들은 이제 미워할 대상을 찾는 데에 거의 전문가다. 누구는 정치 때문에 미워하고, 누구는 취향 때문에 미워하고, 누구는 출신 지역 때문에 미워하고, 누구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미워한다. 정말 신기한 건, 서로를 향해 혐오를 쏟아내고 나면, 정작 본인들은 요즘 사람들 왜 이렇게 공격적이지?라고 되묻는다는 거다. 가끔은 이 사회 전체가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Love wins all 같은 말은 꽤 도발적이다. 너무 순진해서 도발적이고, 너무 단순해서 날카롭다. 마치 이 모든 혐오의 늪을 어떻게 건너가죠?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아주 시크하게 그냥 사랑하세요!라고 말하는 기분. 이건 거의 자전거 타는 법 모르는 사람에게 중심을 잡고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가요라고 말하는 것만큼 황당한 해결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단순한 말만이 통할 때가 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혐오는 대부분 거창한 철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사실 이유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내 기준과 다르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저 사람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작은 불편함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혐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너무 쉽게 정당화한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문제야’라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정말 잃어버린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이 가진 태도, 여유 같은 것, 느긋함 같은 것,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사실 거창한 감정이 아니다. 멜로드라마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SNS에 길게 쓰는 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그냥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거다. 저 사람 왜 저럴까?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네라고 한 번 더 굽어보는 능력이랄까.

요즘은 이 단순한 한 번 더가 잘 안된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너무 예민하다. 너무 소비할 것도 많고, 너무 부대끼는 것도 많다. 모든 것이 빠르고, 빠른 만큼 마음도 바빠져서, 어떤 사람을 한 번 더 만나보며 대화할 시간에 MBTI를 물어보고, 아 그래서 너가 나랑 안 맞는다며 단정 지어 버리고, 누군가가 조금만 자기 기준에서 비틀어져 있어도 손쉽게 아 저런 인간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거야라고 결론을 내린다. 상대가 누구든, 상대가 뭘 하든, 사이좋게 지낼 이유를 찾기보다는 멀어지는 명분을 찾는 데 더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나 Love wins all 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 짧은 한 문장은 이런 시대에, 아주 조용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 모든 분노와 불안과 짜증이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 그러니까 결국 이기는 건 사랑이야라고. 이게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경험해 봤다. 누군가에게 실망한 날, 커피 한 잔 건네주는 친구의 말투가 우리를 살리는 순간. 하루 종일 일 때문에 짜증 났다가도, 저녁에 집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어 왔어? 한마디 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린 순간. 사실 이런 것들이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의 힘이다. 우리는 늘 작은 돌 하나에 약해빠진 마음의 전체를 눌리고 있다가도, 돌려주지도 못할 은근히 따뜻한 손과 기댈 수 있는 여러 어깨에 기대어 가며 위로 받으며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 아닌가.

혐오는 사람을 소모시키지만, 사랑은 사람을 회복시킨다. 혐오는 관계를 끊지만, 사랑은 관계를 이어붙인다. 혐오는 그럴듯한 논리를 포장하지만, 사랑은 별다른 논리가 없다. 그럼에도 사랑이 결국 이긴다고 믿게 되는 이유는, 사랑만이 사람을 남기기 때문이다. 혐오로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며 흩어져 버린다. 그리고 결국 혼자 남는다. 요즘 유독 외로움이 유행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사랑이 거창하다고 생각하면 자꾸 멀어진다. 그냥 조금 덜 화내주는 것도 사랑이고, 메시지에 느리게 답한 친구를 굳이 의심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저 사람은 틀렸네라고 단정 짓지 않는 것도 사랑이겠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괜히 짜증 내지 않는 것도 사랑이고, 그렇게 작은 사랑들이 모여야 큰 사랑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작은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건, 다른 사람도 나만큼 힘들고, 다른 사람도 나만큼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도 나만큼 불안하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사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는 혐오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서 생기는 균열 같다.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 분노가 들어오고, 배려가 사라진 자리에 혐오가 들어온다. 그리고 이런 빈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진다. 우리는 그저 살아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서로의 빈틈을 돌볼 여력조차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Love wins all 같은 문장이 필요하다. 단순한 문장일수록 마음에 박힌다. 복잡한 시대일수록 단순한 해답이 힘을 가진다.

사랑은 결국 사람으로 끝나는 말이다. 사랑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결국 사람 문제다.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고, 사람 사이에서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로 또 다른 상처가 만들어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랑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건 결국 또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혐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혐오를 상쇄시킬 만큼의 사랑을 만들 능력도 있다. 사랑은 거창한 운동이 아니고, 거대 담론도 아니고, SNS 해시태그도 아니다. 사랑은 그냥 내 앞의 사람을 조금 덜 미워하는 일이다. 조금 더 이해하려고 하는 일이고, 조금 더 다가가보려는 잠깐의 노력이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가 조용히 세상을 이겨내는 순간들로 이어질 때, 그때 비로소 Love wins all이라는 말이 하나의 노래 제목을 넘어 현실이 된다.

대혐오의 시대, 필요한 건 결국 사랑이다. 이 말이 너무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촌스럽다는 건, 원래 진실이 조금씩 세월을 먹었을 때 생기는 맛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런 촌스러움이 오히려 가장 세련된 태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혐오에 중독되어 있었고, 이제는 좀 덜 미워하고 좀 더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때다.

어쨌든, 결국 이긴다는 건 분명하니까. Love really wins all~~~~!

월요일부터 스트레스 받고 또 벌써부터 초 예민해지는 예민보스 내 자신, 이번주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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