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n Oct 02. 2020

그렇게 비싼 독일 의료보험

타라고나에 위치한 종합병원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이도의 차례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평생 아직 응급실을 가본 적이 많지는 않지만 내 기억엔 그곳이 어디건 밤이건 낮이건 덥건 춥건 아픈 사람들로 넘쳐났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때와 장소를 가려 아플 수는 없지 않은가! 대기실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눈부시게 푸르르기만 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 대기실 안의 스피커를 통해 이도가 호명되었고 간호사를 따라가 응급실 한 편의 침대에 이도를 눕혔다. 그곳에서 피검사, 소변 검사 등을 하는 동안 우느라 거의 탈진상태가 된 이도를 바라보며 오만가지 자책감이 들었다. 물론 그 자책감이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도를 품에 안고 수분 보충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간호사들에게 또 의사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난 뒤에야 입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원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지만 의사 소견으로는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단지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확실하니 그때까지 병실에서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겨우 한숨을 돌리자 한국인 아주머니가 아직도 대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났다. 서둘러 아주머니에게 돌아가 상황설명을 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네, 고맙습니다.”

“아기 퇴원하면 우리 집에 놀러 와. 같이 점심 먹자고.”


아주머니를 태운 택시가 떠나는 것을 본 후 난 이도가 잠들어 있는 소아과 병실로 돌아왔다. 커다란, 아주 커다란 허기가 몰려왔다. 


“다행이다, 그렇지?”

“응. 의사가 괜찮을 거리고 했으니.”

“마리는 괜찮아?”

“조금 배고프고 춥지만...”

“그러게, 여름인데도 병실이 춥네. 우선 근처에서 먹을 걸 좀 사 올 테니 기다리고 있을래?”

“고마워.”

“나도 고마워.”


우린 그렇게 서로 고마워했다. 그 상황을 함께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근처의 쇼핑몰에서 먹을 것과 몸에 걸칠 만한 것을 사 가지고 돌아와 허기를 채우고 추위를 물리치니 다음엔 피로가 몰려왔다. 마리는 이도가 잠들어 있는 침대에 옆으로 몸을 뉘었고 나는 옆에 있던 빈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검사 결과를 들고 온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환자 보호자 되세요?”

“네, 환자 아빠예요.”

“이 곳은 2인실이고 환자가 언제라도 입원할 수 있으니 침대를 항상 비워두어야 해요. 비어 있다고 이 침대를 사용하면 안 돼요.”

“아, 미안해요.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검사 결과 모든 게 정상이니 환자가 일어나는 대로 담당의사를 호출하셔서 결과에 대해 자세히 들으신 후 퇴원하시면 돼요.”

“고맙습니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이도와 마리를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쨌든 위급한 상황이 지나고 나니 문득 병원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2인실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만만치 않은 의료비가 청구될 거라 짐작만 하고 있던 터였다. 독일에서라면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돈이 들 일이 없겠지만, 있다 하더라도 부담 없는 비용이겠지만 이 곳은 스페인! 하여간 같은 EU 유럽연합국가이기에 독일 의료보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원무과에 가서 대략적인 병원비에 대해 문의를 했다.


“소아과 병동의 안이도 환자 보호자인데 혹시 병원비가 얼마나 청구가 될지 알 수 있을까요?”

“아직 입원 중 아닌가요?”

“맞는데 입원비가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일지 궁금해서요.”

“환자의 의료보험이 있나요?” 

“네, 있기는 한데 독일 공보험이에요.”

“환자 신분증과 의료보험 카드를 보여주시겠어요?”


난 이도의 독일 여권과 독일 의료보험 카드를 그녀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고 무엇인가를 조회해보더니 그녀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병원비가 별도로 청구되지는 않네요.”

“정말요? 병원비가 전혀 청구되지 않는단 말인가요?”

“네, 아직 퇴원 전이지만 별도로 지불할 내역은 없어요.”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독일 의료보험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소득에 따라 나뉘는 독일의 공보험과 사보험 중에 우리 부부는 소득의 약 15% 정도를 보험료로 내는 공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마리는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고용인과 함께 의료보험료를 반 씩 부담하며 나 같은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인 경우에는 100% 본인 부담이다. 베를린의 월평균 임금을 약 3500유로로 가정했을 때 (월평균 임금에 대한 오차는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크지만) 마리의 경우 매월 약 260유로 나의 경우에는 약 520유로가 의료보험료로 지출되는 것이니 우리 가족이 매달 지출하는 의료보험비만 약 780유로가 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나마 공보험의 경우 자녀는 따로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그러한 금액을 내면서 실제로 우리가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이용 시에도 엄청난 인내심이 요구된다. 기본 2주에서 길게는 몇 달을 기다려야 내원이 가능하며 전반적으로 간호사나 의사들의 서비스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환자들을 기분 좋게, 웃게 만드는 광대는 아니지만 아픈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여간 이러한 이유로 나는 베를린의 의료보험에 대해 불만을 가득 품고 있었다. 휴가 중 먼 이국땅에서 이런 일을 겪기 전까지는. 물론 의료보험료가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되지만 적어도 유럽 국가를 여행할 땐 아프더라도 병원비 걱정할 일은 없으니 마음은 편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중해 그리고 응급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