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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 Oct 23. 2020

레고와 플레이모빌

이도는 아기 때부터 무엇인가 끼워 맞추는 것을 좋아했다. 단순한 도형으로 이루어진 나무블록을 비롯한 블록완구, 유아용 공구세트 또는 퍼즐 같은 것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레고를 가장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마니아라고 해야 하나?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듀플로 제품으로 시작해서 4살이 지난 지금은 8-12세용으로 판매되는 레고도 혼자 설명서를 보며 만들어 버린다. 물론 어떤 부분은 정교하게 조립하지 못하여 약간 헐겁기도 하고 가끔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 만든다. 그럴 경우를 제외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거들라치면 옆에서 보고만 있으란다. 어쩔 수 없이 옆에서 그저 지켜만 보는데 이도의 집중력이 보통이 아니다. 보통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혹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영상물 시청을 제외한 한 가지에 놀이에 10-20분 정도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도의 경우에는 시간을 정확히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한 시간 가까이 아니 그 이상을 레고에 집중한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너무나 재밌게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몰래 레고 블록을 만지작거리게 되지만 이도의 따가운 시선에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그렇게 혼자 만든 후에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부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는데 두 번째부터는 내게 함께 조립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도의 표정은 마치 ‘내가 한 번 만들어 봤는데 이 정도면 아빠도 만들 수 있을 테니 한 번 해봐.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을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설명서 없이 혼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나보고 설명서 없이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어떤 걸 어떻게 멋지게 만들까 하는 고민으로 시작부터가 난관일 텐데 이도는 마치 설명서를 보고 만드느 냥 막힘이 없다. 그리곤 자신이 창조?한 레고 조형물을 가지고 신나게 논다. 음향효과까지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레고는 이도에게 몇 번 놀다 싫증이 나버리는 단순한 블록 장난감이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즐기는 도구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8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등장한 레고와 플레이모빌은 당시 국내의 조악한 완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질과 디자인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높은 가격의 장벽에 누구나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그런 흔한 완구는 절대 아니어서 항상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혹은 그 외에 선물을 받을 기회가 있다면 레고를 받을까 아니면 플레이모빌을 받을까? 플레이모빌의 전설적인 CM 영향이 컸는지 내 선택은 레고보다는 대부분 플레이모빌이었다. 아직도 티브이에서 흐르던 플레이모빌의 CM송을 기억한다. ‘플레이 모빌은 내 친구, 내 친구 플레이 모빌. 아~아빠 영 플레이 모빌 좋아요...’  플레이모빌의 컬러 또한 내 선택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블루톤(물론 개인 적인 생각이지만)의 종이 박스와 레고에 비해 전반적으로 톤이 다운된 컬러는 훨씬 멋지게 보였다. 그 당시 이모 친구 중에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던 친구가 있어서 이모에게 플레이 모빌을 여러 개 선물 받았던 기억도  나고 우리 집이 그런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플레이모빌은 내 어린 시절 최애의 장난감이었다. 지금 이도가 레고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레고와 플레이모빌은 성격이 다른 완구다. 간단히 말하자면 레고는 만드는 재미가 있고 플레이모빌은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레고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라 완성 후에는 전시용으로 남거나 해체 후 다시 만들기를 반복한다. 물론 요즘에 나오는 테크닉 같은 시리즈는 무선 조정기를 통해 완성된 제품을 움직여 가며 즐길 수도 있지만 말이다. 혹자는 레고가 창의력, 입체감각, 문제 해결 능력 발달 등의 매우 긍정적인 교육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도가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을 지켜보면 매우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런 교육적인 측면만을 보고 레고가 다른 완구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실제로 레고를 만들어 보면 얼마나 잘 만들어진 장난감인지 느끼게 된다. 포장박스 위에 연출된 제품의 세련된 이미지라던지 조립과정 하나하나가 글자 하나 없이 설명되어 있는 책자의 인포메이션 디자인, 그리고 조립 순서대로 소분 포장되어 있는 블록과 그 블록의 정교한 만듦새.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이 비싼 편이고 작은 사이즈의 블록은 잃어버리기 쉽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도나 나 같은 경우는 아무리 작은 블록이라도 없어지면 그 블록을 찾을 때까지 제품을 완성하지 않는다. 그때의 스트레스란...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제품이 담겨있던 박스에 해당 블록과 설명서를 원래대로 보관하는 것이겠지만 소장하고 있는 레고 제품이 수십 개가 되다 보니 모든 제품의 박스를 보관할 공간을 할애하기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박스는 모두 버리고 플라스틱 지퍼백에 블록과 설명서를 함께 보관하는데 블록수가 적은 제품의 경우는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재조립을 할라치면 블록 찾는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단점 대부분은 이도가 아닌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이도는 레고가 마냥 좋기만 하다. 장래희망이 경찰에서 소방관으로 소방관에서 건축가로 바뀌게 된 계기도 레고이니 인생설계까지 하는 완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루는 이도가 설명서 없이 자기 멋대로 만든 레고를 나와 마리에게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미, 아삐, 이거 선물이야.”

“우와, 이게 뭔데?”

“이도가 집 만들었어. 마미랑 아삐 줄게.”

“고마워. 정말 멋지다.”

“여기 정원도 있고 여기는 침실, 여기는 주방, 욕실, 옷방...”

“그런데 이도 방은 어디야?”

“이도 방은 여기 없어.”

“왜?”

“이도 집은 따로 있거든.”

“아, 그렇구나.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 이도는 따로 사는 거야?”

“응. 이도 집은 이제 만들 거야.”


벌써 이렇게 독립적인 내 아들, 안이도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벌써 우리 품을 떠나 혼자 살 생각을 하다니! 그래, 나중엔 어차피 다 혼자인 걸 뭐. 하여간 건축가 아들에게 선물 받을 멋진 집을 상상하니 서운함도 금세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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