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연출가가 선보이는 그리스 고전은 뭐가 다를까 했는데 역시나 엄청난 공연이었다. 무채색을 기본으로한 심플하고 현대적인 세련된 무대, 단촐한듯 하지만 다양하게 변신하는 우산, 목관 같은 소품들, 발성과 움직임 등 기본에 충실한 탄탄한 배우들, 현대무용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안무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미지와 느낌들 모두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전에 주눅들지 않고 오늘의 관점으로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연출의 역량이었다. (공연 중 갑자기 객석에 불이 들어오더니 배우들이 각각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관객들에게 일상의 언어로 말을 건다!) 삼촌이 만든 인간의 법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신의 법을 따르겠다고 오빠를 묻어주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안티고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듯 했으나 아들 하이몬과 아내 에우리디케, 조카이자 아들의 약혼녀인 안티고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크레온과, 오이디푸스 가문의 대를 잇는 엄청난 비극을 지켜보며 카타르시스가 이런 것이구나를 경험했던 황홀한 9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