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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wan Kim Jul 20. 2024

내 이름은 빨강

책모임에서 오르한 파묵을 읽고 있다. 첫모임 때 '검은 책'을 읽었는데 페이지마다 나오는 튀르키에 역사에서 끌어온 듣도 보도 못한 인물, 사건들에 질려서 외국문학을 정확히 읽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절실히 깨달은 시간이었다. '내 이름은 빨강'이 그 두 번째 책!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이기도하고 먼저 예방주사를 맞아서인지 첫 번째 책보다는 수월하게 읽혔다. 1591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궁정화원에 속한 한 세밀화가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추리소설적 기법에, 등장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등장하는, 마치 모자이크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서술방식(심지어는 개, 말, 금화, 죽음, 빨강에게까지 발언권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엄존하던 시절 두 아이를 가진 한 여성의 생존이야기까지 소설은 당대 튀르키에인들의 삶의 면모를 풍성하게 드러낸다. 갈등의 축은 신의 눈으로 본 평면화를 주로 그리던 궁정화원에 베네치아에서 유래된 '이교도'들의 원근법이다. 이는 단지 그림그리는 기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서양의 중세를 무너뜨린 개인의 재발견과 연관된 민감한 주제일 것이다. 신이 본 세상을 그릴 것인가?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릴 것인가? 책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 이야기는 재미있게도 '오르한'이라는 작가에 의해 기록되는 것으로 끝난다. 책 제목 중, 빨강의 의미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때로는 맹목과 광기로 치달을 수 있는 인간의 신념의 색깔일수 있다는 한 참석자분의 해석이 와 닿았다. 이토록 힘겹게 발견된 튀르키에의  '개인'이 20세기 그들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 문득 그들의 현대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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