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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Feb 23. 2022

포기한다는 것.

'나는 세계 제일 피구왕이 될거야!' 하는 외침과 함께 불꽃슟을 훈련하며 매일마다 그 거대한 벽에다 공을 던지는 통키의 어린 시절은 유난히 빨리 지나가며 어른이 된 피구왕 통키가 화면에 비친다.


그것을 우리는 아마 성장이라 부를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통키가, 진짜 피구왕이 되는 과정. 모든 영화나 만화에서 그 포기는 볼 수 없다.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봤던걸까. 내 인생에서 피구왕이 되려고 잠시 폴짝이다 주저앉았던 수많은 포기의 날들마다 나의 마음은 한껏 내려간다. 속상한걸까. 부끄러운걸까. 실망한걸까. 그 기준이 나에게 있는지 타인에게 있는지도 모른채 그저 밑으로, 밑으로 내려갈 뿐이다. 


최근 2년 정도 굉장히 몰입했던 취미가 있었다. 취미가 어쩌다 일이 되고, 어쩌다 꿈을 가지게 되고, 어쩌다 내가 피구왕 통키가 되지 않을까 상상했던 순간들. 그러다 갑자기 파도에 모래성이 사라지듯 그렇게 주저앉고 말았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그 10초 컷으로 보여지는 통키의 성장 과정이 나에겐 너무 길었었던건지 그 중 한 부분을 견디지 못했고, 지겨워졌고, 그만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열정을 잃어버린 것 뿐이다. 그래서 더욱 부끄러웠다. 이렇게 포기하다니, 역시 너는 피구왕이 될 수 없어. 하고 낙인이 찍혀버린 듯한 느낌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왜 포기했을까, 왜 놓아버렸을까, 그리고 왜 다시 돌아갈 엄두가 안나는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취미를 대신할 다른 것들로 하루를 채워도 본다. 또 다른 목표를 가지려고 아직 난 멈추지 않았다는 증명을 해보이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이런 저런 노력과 방황을 하고 있는데, 의문인 건 이게 나를 위한건지, 그 열정을 한껏 뽐냈던 그 시절 나의 동료들을 의식하는건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 나날들이다.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참 아프고 어렵고 견디기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청춘이라면 한 번 도전해야 한다며 야심차게 준비한 통기타가 저 깊은 베란다 안에 쿵 박혀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어둡고 우울하게 존재하지도 않을텐데 하는 것들이 마음 속에 차곡 차곡 쌓여간다. 


그럼에도, 그래 차라리 시작하지 말걸 - 이라 하기에는 이미 늦기도 하였고, 그리고 살면서 수많이 보고 만나온 피구왕들이 괜시리 목에 가시처럼 툭, 걸린다. 베란다에 먼지가 소복이 쌓인 통기타도, 옷장 속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는 뜨개 실들도, 2년간 내가 정성을 쏟았던 책장 속 빼곡한 책들도 다 그 나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시작의 기쁨과 조금은 성장했다는 느낌, 그 속에서 찾았던 나에게 남아있던 열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것이 고스란히 나의 30대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아마 나의 인생이 되겠지. 실패했던 연애담처럼 그것이 실패했든 성공했든 왜인지 그떄의 내 시절을 생각하면 괜한 미소가 지어지듯이, 그렇게 남아있는 이 추억들도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장면까지도, 왜인지 40대의 나는 그걸 조용히 추억하며 미소짓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어쩌면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그 취미, 앞으로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또 다른 모습으로 부딪힐지도 모르는 그시작의 기쁨과 열정들을 포기했다 해서, 실패했다 해서, 너무 미워하고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그 기억들을 그저 잘 보듬아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가끔씩 밑으로 내려가는 나의 마음들도 잘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누구나 피구왕이 되지 않지만, 어릴적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던 그 재미는 잘 잊혀지지 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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