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 주 되었나. 이렇게 마음이 분주한지. 이것 저것 알아보고, 이것 저것 치우고 정리하고 버리고 또 새로 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는게 꼭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고 기대하며 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해가며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시기가 지나고 진짜 이사가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보통 이런 날 감상에 젖어 마지막 정리를 하며 평화롭게 지낼 줄 알았는데...
남편의 전화 한 통. 자기야, 나 사기 당한 것 같아.
수많은 가전 중 딱 하나 욕심냈던 그 식세기 하나 마련하려 하다, 10만원 아끼려다 180만원이 도망갔다.
그래도 둘이어서 난 건지 아니면 둘이어서 더 심난한건지 모르겠지만, 남편과 2인조가 되어 내용증명 보내고, 카드사니, 소비자보호원이니 번갈아 전화하며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갔더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쨍쨍한 해가 조금씩 들어가려고 하는 이 시점. 처음 자리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새로운 시작엔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선물 상자에 진짜 할인 쿠폰이 있는지, 아니면 꽝, 어쩌면 폭탄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어릴 적 부르마블을 하던 그 시절 난 황금열쇠가 좋았다. 3번 이동 정지를 먹을 수도 있고, 무인도에서 나홀로 있어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두근거림이 좋았다. 혹시라도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하는 그런 마음.
어른이 되면서 점점 줄어들었던 황금열쇠를 뒤집는 순간이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것 같다. 매일이 똑같았던 일상 속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이들 등원을 시키거나 회사에 출근하거나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표정을 짓던 그 일상 속에서 약간은 벗어난 느낌. 물론 그곳에서 적응한 1년, 2년 후 나는 또 다른 권태감을 느끼겠지만, 지금으로선 부르마블의 황금열쇠가 아닌, 진짜 어른의 황금열쇠 뒷면를 내 손에 만지작 만지작 거리는 느낌이라 이 순간을 잘 기억하고 싶다.
그나저나, 그 좋다는 식기세척기를 들일 수 있을까. 험난하다 험난해.
이사 전 날. 기승전 식세기사기. 다들 인터넷쇼핑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