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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Mar 01. 2022

셋째의 이유

내가 왜 셋째를 가졌더라.

셋째는 분명 사고도 간절한 바람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중간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아 - 하는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비싸서 계속 사지는 못했던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난 그날 충동적으로든 계획적으로든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비싼 값을 치뤄 결제를 했고 아이는 뾰로롱, 내 뱃속에 자리 잡았다.


그나저나 내가 왜 장바구니에 '셋째'라는 존재를 들였다 놓았다 했을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바라보았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두 아이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였다. 놀이터에서 괜히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삐죽댈때 동생이나 누나의 존재는 생각보다 강력했고, 목욕탕에서 혼자 노는 것과 둘이 노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두 아이는 걸핏하면 싸우지만 걸핏하면 화해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지낸다. 그만큼 엄마의 사랑도 아빠의 지원도 나눠가질 수밖에 없지만, 내 짧은 인생 경험 상 나눔이란 건 긍정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푸짐한 혼밥 보다는 적게 먹어도 누군가와 나눠먹는 것이 더 익숙하고, 더 정겹다. 이런 엄마 밑에서 어쩔수없이 태어났으니 아이들도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두 아이가 놀이에 흠뻑 빠져 엄마도 아빠도 필요없는 순간을 보고 있을 때 문득 셋째가 생각났다. 그리고 한 번 생각난 셋째에 대한 바람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시작이자 전부가 아니였을까 싶다.


우리집은 흥부네 집에 가까웠지만, 박씨를 터뜨리기 전 흥부네 집 아이들이 어땠을까 라는 책 속 답은 어디에도 없어 잠시 끄적이자면, 그리 싫지 않았다. 물론 잠금장치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집이었지만, 난 한 번도 열쇠를 가지고 다닌 적이 없다. 식구가 많아서 누군가 한 명은 집에 있었으니 막내인 내가 집 열쇠가 없어 집을 못 들어가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흥부네 집에 맞벌이는 기본이기에 어른들이 일을 하러 나가는 것에 대해 큰 괴리감도 없었다. 엄마랑 아빠도 맞벌이.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맞벌이. 단지 일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기에 그렇게 유리정원도 아닌 날 것도 아닌 공간 속에서 자란 것 같다. 환경의 힘은 어찌나 위대한지 가정을 꾸려야겠다, 가족 구성원은 적지는 않아야겠다, 그리고 언제나 일은 해야겠다. 라는 기본 마인드가 절대 안바뀐다. 엄마는 일을 하겠으니, 남은 형제들 너네들끼리 잘 놀아줬음 좋겠다. 싸우든 치고 박든 그래도 무섭지 않게, 외롭지 않게, 혼자 아프지 않게 잘.


그런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셋째를 가졌고, 사실 두 번이나 가졌고, 한 번의 유산 후에도 또, 또, 이 과정을 반복한다. 임신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고 입덧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6개월 이후 부터는 막달처럼 누워만 있고 싶었던 것 보면 값비싼 결제는 맞긴 맞나보다 싶지만, 그리고 그 결제의 할부 10년 중 고작 9달 밖에 지나지 않은 것도 알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뱃 속의 아이도 우리집에 놀러와서 셋이 뛰어노는 장면을 상상하면 벅차다. 너무나 부족한 엄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세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무사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는 37주 우리 기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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