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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떼 Jan 22. 2022

죽음에 대한 기억

21년 7월의 기록

때때로 기록

죽음에 대한 기억



얼마 전 아는 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고인과의 인연은 없었으므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이한 너무 어린 동생의 그 상황에 안타까워했다. 그 작은 체구에 상복을 입고서 덤덤한 얼굴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던 그 모습. 나도 모르게 괜찮아?라고 물은 뒤 속으로 괜찮을 리가 없잖아 하고 스스로 대답했다. 예상보다 너무 괜찮아 보이는 모습 뒤로 지난밤 쓰러질 듯 울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꿋꿋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지만 온전히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임을 알기에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돌아온 동생에게 고생했다 라는 말을 전했을 뿐. 서른다섯의 어른이 되었어도 이런 상황에 맞는 말을 찾기 어렵다. 


문득 지난날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때가 떠올랐다. 어릴 적 나에겐 호랑이 할아버지같이 무서운 존재였고 내가 좀 자란 이후에도 늘 나에겐 강하고 큰 사람이었던 할아버지. 그랬던 할아버지가 아픈 날이 많아졌고 좀처럼 아프단 소리를 안 하시던 분이 거의 매일 같이 아프다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셨다. 아들아 아프다, 병원에 가고 싶어. 아버지는 매일 같이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병원을 모셔다 드리고 다시 집에 오시는 걸 반복하셨다. 시골 작은 병원을 다니셨었는데 아무래도 큰 병원을 가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해서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폐암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연세가 많아서 수술은 어렵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시도록 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반년 정도를 버티시다가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바비큐 파티를 하고 늦게 들어온 다음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길로 바로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친척들이 모두 모여있었고 아버지는 수염이 많이 자라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이었는데 나는 우리가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고 슬퍼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린 종종 웃었고 일상을 나눴고 그러다 문득 슬퍼서 엉엉 울었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엉엉 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오래 아프지 않고 가셔서 다행이야 그래도 호상이다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도 이별은 여전히 낯설었고 슬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는 슬프지 않다. 때때로 할아버지가 그립지만 그래도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부모와 이별하는 것과 조부모와 이별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동생에게도 언젠간 그런 날이 오길. 충분히 슬퍼하고 잘 이별했으면 하는 마음을 이곳에 담아 본다.



21년 7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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