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에 6개월, 22개월 연년생 데리고 흑해 건넌 사연
이 글은 아이와 진한 비행 육아를 기록한 첫날의 얘기다. 연년생 아이들과의 첫 장거리 비행 이후 두 번의 또 잊지 못할 왕복 비행에 대해서도 앞으로 차근차근 글을 남기려 한다. 엄마의 육아력이 몇 단계 올라간, 아니 어쩌면 최고 단계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1000일"
포털사이트에 뜬 뉴스 헤드라인을 보며 2년여 전 진땀 나는 비행 육아가 떠올랐다.
2022년 봄, 인천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비행시간은 13시간 50분. 기존엔 한국에서 유럽 주요 도시까지 12시간 정도면 갈 수 있었는데 전쟁 여파로 2022년 3월 이후 항로가 변경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현재(2024년 11월 기준) 한국에서 유럽 쪽으로 가려면 여전히 14시간 비행을 피할 수없다.
거리에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2022년 4월 초,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유로운 혼자가 아닌 22개월, 6개월 아기들과 함께. 가족 완전체가 아니었다. 독일 주재원으로 발령 난 남편은 3개월 전 먼저 독일로 떠났다.
당시 비행기는 러시아 영공을 지나가는 대신 중앙아시아를 거쳐 카스피해, 흑해를 찍고 독일로 향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흑해는 이름과 달리 눈부시게 푸르렀다.
창문 밖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이내 기내에서는 엄마 눈물 쏙 빼게 하는 '마라맛 육아' 비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 전 첫째를 키즈존에서 실컷 놀리며 아이 에너지를 빼는데 전념했다. ’낮 비행이라고 별거 있겠어? 아이랑 같이 놀아주면 되겠지‘라며 몸에 잔뜩 들어간 긴장도를 스스로 낮추고 싶었다. 아이와의 낮 비행이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무겁게 여기는 건 싫었다. 비장해지는 나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낮 비행이니 아이가 쉽게 잠들리 없었다. 비행기 안은 아이들에게 낯선 공간이라 변수가 가득했다. 특히 예민하고 섬세한 성향의 첫째에게 기내는 더욱 불편했을 테다.
기내에 탑승하자마자 헬게이트가 열렸다. 아찔한 비행 육아가 본격 시작된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 위로 몸을 띄운 순간부터 첫째는 기압차 때문인지 30여 분간 발버둥 치며 울고불고했다. 아이의 발악을 온전히 마주했던 30분이란 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악 쓰던 아이는 어느새 엄마 껌딱지 모드로 태세를 바꿨다. 비행시간 총 14시간 중 12시간 동안 아이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나 다름없었다. 나에게 안 떨어지려고 안아달라, 내려달라, 이거 해라 등등 지시하기에 바빴다. 불안을 낮추려는 아이의 행동이었겠지만 엄마인 나도 차오르는 눈물을 꾹 누르며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비행시간 내내 화장실을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셨는데 마라맛 육아에 목이 바싹바싹 탔다. 잠깐 목을 축인다는 게 에라잇 모르겠다며 생수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게 화근이었다. 엄마 껌딱지였던 아이는 승무원 이모가 잠깐 놀아주겠다는 손길도 뿌리치고 엄마 따라 기내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었다. 집에서 화장실 문 열고 볼일 본다는 엄마들 얘긴 많이 들어봤어도 비행기 안 화장실에서 아이 안고 볼일 본 엄마는 과연 몇이나 될까. 여기 한 명 추가요!
당시 6개월 아기였던 둘째는 아기답게 분유를 먹고 비행시간 내내 쭉 잤다. 동생이 멘 아기띠가 수면제였다. 아기띠에 매달린 채 대롱대롱. 깊은 잠에 빠졌을 때만 베시넷에 옮길 수 있었지만, 2호는 1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이때 여동생까지 없었으면 어땠을까. 나 홀로 애 둘과 비행기를 탔다면 아기들과 함께 엉엉 운 엄마라고 사진 찍혔을지도. 마라맛 비행에 동행한 여동생이 둘째를 밀착 케어한 덕분에 나오려던 눈물을 꾹 참았다. 애둘맘은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무너져선 안된다. 아니, 무너질 수 없다.
이제 한숨 좀 돌리나 싶더니 역시 아이들은 밀당의 고수다. 둘째 새 기저귀로 갈고 돌아서는 순간 응가 뿌지직. 심지어 기저귀까지 새는 바람에 내 옷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에헤라디야.
그렇게 두 아이 번갈아 케어하며 장시간 비행 내내 지칠 대로 지쳤다. 더 이상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끝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내려놓고 첫째 집중 수발을 들던 순간, 아이는 고개를 떨군 채 갑자기 잠에 빠졌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두 시간 전, 한국 시간으로 아이 밤잠과 겹쳤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아이도 열 시간 넘게 기내에서 스스로 사투를 벌였으니 피곤할 만 하지. 오히려 잘 된 걸까. 코시국이라 비행기 안 빈자리가 꽤 많았다. 좌석 한 줄이 모두 비워져 세 자리 혼자 독차지해 누울 수 있는 이른바 '눕코노미'도 가능했다. 애둘맘에게 눕코노미는 신세계였다. 승무원이 비어 있는 다른 열에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아이를 편하게 눕히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비행기를 탄다면(특히 장거리 노선) '아기 수 = 어른 수 +1'가 그나마 가능한 게임이라고 본다.
당시 첫째는 22개월(만 1세), 둘째는 6개월(만 0세)이었으니 둘 다 '영아(嬰兒, 출생 직후부터 만 1세까지 뜻함)'였다. “엄마, 아빠” 말문만 겨우 터졌던 1호는 이제 여러 언어 인사말과 숫자를 말한다. 기저귀를 찬 채 기어 다니던 2호는 화장실에서 혼자 용변을 해결한다. 어느덧 54개월(만 4세) 빅 보이, 38개월(만 3세) 빅 걸이 된 것. 지난 2년 반 동안 인천과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는 비행기에 다섯 번 몸을 실으며 아이들의 비행력도 쑥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