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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Oct 10. 2023

어머니와 연휴를 보내고 나서 하는 반성과 후회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다소 길어진 주말 연휴. 어머니를 대전으로 모셨다. 어디든 여행하고 구경하는 것 좋아하는 어머니께 모처럼 여기저기 나들이를 시켜드리고 싶어서였다.


토요일에는 집 근처 갑천변에 만발한 황화 코스모스 밭을 구경시켜 드리고, 일요일에는 각종 연꽃이 가득한 부여의 궁남지에 들렀다가 ’대백제전‘이 열리는 부여박물관도 보여드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가을단풍의 정취를 맛볼 수 있을 청주의 청남대에 모시고 가기로 했다.


계획은 완벽했고 마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나빠져있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하루에 한 번씩 나름 건강상태를 가늠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볼 때마다 체감하게 되는 어머니의 건강 상태의 변회는 무서울 지경이다.


오래전부터 한쪽 귀가 안 들렸는데, 이제는 나머지 한쪽 귀마저도 청력이 많이 나빠지셨는지 말귀를 거의 잘 못 알아들으신다. 시력 역시 몇 해 전 뇌졸중이 온 이후로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잘 걷지도 못하신다. 거의 20-30 미터를 걸을 때마다 앉아서 쉬고 싶다고 하신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인지능력의 감퇴다. 이해력이 현저하게 낮아지셨다. 여기에 청력의 문제까지 더해지니 이제는  어머니와 ’도란도란 조곤조곤‘ 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든 건강상태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과 달리 조금도 변하시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호기심이다. 젊으셨을 때와 비교해서도 더 하면 더했지 결코 줄어들지 않은 어머니의 넘치는 호기심. 하지만 ’높은 호기심‘과 ’낮아진 건강‘의 부조화가 초래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꽃밭에서는 온갖 식물들의 이름이 뭔지를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시고, 박물관에서는 각종 유물들의 이름과 시대와 용도를 궁금해하신다. 드넓은 공원에서는 구석구석 어떻게 생겼는지 다 가보고 싶어 하시고, 특이한 건물이라도 보이면 빠짐없이 들어가서 위층 아래층을 샅샅이 다 살펴보고 싶어 하신다.


“저게 이름이 뭐꼬?”
“스킨답서스래요”
“쯔끼다?”
“아뇨, 스. 킨. 답. 서. 스.”
“쓰끼다시?”
“(소리지르듯) 스! 킨! 답! 서! 스~~!!!”
“(인상을 찌푸리시며) 머라카노?”
“에잇! 그냥 좀 몰라도 돼요!”


묻는 말에 대답을 해드리려 하다 보면 내 목소리는 저절로 차츰 커진다. 그리고 계속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마치 내가 화가 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가 실제로 화가 난다 ㅠㅠ.



가끔은 어머니가 예쁜 꽃들이 있으면 굳이 이름을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아, 예쁘구나”하고, 박물관에서 신기한 유물이 보이면 굳이 그것의 용도나 이름을 궁금해하지 말고 “그냥 저것이 백제의 유물이겠거니”하고 봐줬으면 좋겠다. 멀리 예쁜 풍경이 보이면 굳이 가까이 가서 보려고 하지 말고 ”아, 멀리서 보니 참 멋지구나“하고, 층계가 많아 보이는 건물을 보면 굳이 성치 않은 다리로 층층마다 다 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아, 참 멋진 건물이 있구나“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그것이 안되고 나는 나대로 그걸 일일이 다 맞춰드리기에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어머니와 내가 딱 30살 차이니까, 나도 머지않아 언젠가 어머니처럼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의 총기를 잃어버리신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안쓰럽고 애처로운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어느새 마음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라도 하고 나면 나중에 혼자서 또 자책하고 후회하는 바보 같은 짓을 무한반복한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어머니는 “이렇게라도 바람을 쐬주는 아들이 있어 고맙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짜증이라도 낼 수 있는 엄마가 아직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하다.


마음은 이토록 애틋한데 정작 함께 있을 때는 관계에 서투른 듯한 나 자신을 볼 때면, 나도 나이만 잔뜩 먹었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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