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태진 Jun 30. 2023

우산, 할머니, 그리고 엄마

2023년 6월 30일 (금요일), 장맛비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기차를 타러 대전역으로 향했다. 마침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광장에서 역 건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웬 할머니께서 우산을 붙잡고는 끙끙거리고 계셨다. 기차 시간이 빠듯해서 그냥 지나가려다가 흘끗 되돌아보니 할머니께서는 우산을 접으려고 하시는 모양인데 낡은 구식 우산이라 쉽게 접히지가 않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여쭤보았다.


“할머니~, 좀 도와드릴까요~?”


할머니는 키도 작고 허리도 굽어 있으신 데다 목소리까지 작으셔서 “으…으…으…” 하는 소리가 대답인지 그냥 신음소리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할머니의 우산을 접어드린 다음,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시는 것까지 보고 나서 다시 내 발길을 재촉했다.


서둘러 걸어가다가 혹시 할머니가 잘 가고 계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다가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왔다. 엄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총명한 기운이 넘치는 분이셨다. 일찍 부모님들을 여의지만 않으셨다면 그토록 좋아하는 공부도 정규교육 다 받아가며 잘하시고 아마 선생님이 되셨을지도 모른다.


뭐든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나이 50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시고, 나이 60에 운전면허증을 따셨다. 나이 70에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오셨다. 호기심 많고 어디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웬만한 젊은 사람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안 다녀본 데가 없으시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한쪽 귀도 잘 안 들리시는 데다 뇌졸중이 한번 오고 난 후로 기억력이나 이해력도 심하게 떨어지셨고 무릎수술을 해서 잘 걷지조차 못하신다. 간혹 우리 집에 왔다가 부산에 내려가실 때면 역에 내려서 방향감각을 잃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하셨다.


대전역에서 낯선 할머니를 도와드리다가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엄마도 저러실 수 있겠구나…’



그 때문이었을까. 간밤에 꿈을 꿨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나는 아내와 거실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어머니께 더 이상 말을 걸 수도, 안아볼 수도 없다는 사실에 현타가 오면서 눈물이 북받쳤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데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아내가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토닥여 주었다. 그 순간 겨우겨우 막고 있던 내 눈물샘이 댐이라도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나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는 날이 오리라고 차가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전의 마음의 준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머니는 간혹 내가 전화해서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하고 부르면 대답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아니?’”라고 말씀하곤 하셨었다. 15살에 부모를 모두 여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맺힌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그제야 절절히 가슴에 와닿았다.


“엄마~!”


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목놓아 부르며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잠에서 깼다.




캄캄한 방안.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조금 전까지 꿈에서 울고 있던 내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정신이 좀 돌아왔다.


‘아,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꿈이었다. 나에게는 아직 “엄마~!”하고 부르면 “그래~ 아들”하고 대답해 줄 어머니가 계신 것이다. 이번에는 너무 감사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났다.


오늘 일을 빨리 마치고 엄마를 보러 부산에 가야겠다. 부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엄마가 곁에 계실 때 최대한 엄마를 많이 부르고 안고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와 연휴를 보내고 나서 하는 반성과 후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