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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Nov 10. 2023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마음 다스리는 방법

매번 엄마를 보러 갈 때의 마음은 똑같다. ‘바람도 좀 쐬어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려야지.’ ‘즐겁게 해 드리고 좋은 추억도 쌓아야지.’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너무 자주 쉽게 틀어지고 만다. 엄마 곁에 있다 보면 이래저래 답답하거나 내 성에 차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되는데 일일이 잔소리를 하다 보면 애초의 좋은 마음은 오간데 없고 짜증스러움과 불편한 마음만 남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내가 도대체 왜 또 그랬을까. 좋은 마음으로 갔으면서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주위에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비슷한 고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곤 한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여성임원 S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하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저는 엄마를 한 번에 한 시간 이상은 절대 안 봐요. 같이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게 되면 꼭 싸우거든요. ㅎㅎㅎ”

S는 직원들에게는 항상 자상하고 살가운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말에 적잖이 놀랐었다.

나: “S님, 어머니랑 엄청 잘 지내는 착한 딸이실 것 같은데 의외네요.”
S: “에이, 그거 착한 거랑 상관없어요. 대표님도 참고하시는 게 좋을걸요?”

생각해 보면 묘하게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멀리 부산까지 찾아가서 엄마를 딱 1시간만 보고 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떻게 하면 짜증 내지 않고 엄마와 최대한 좋은 시간을 보내다 올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운전을 하다가 문득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이 떠올랐다. 2013년 개봉되었던 이 영국 영화는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유독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팀(Tim)에게는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과거의 특정한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초능력은 그 집안의 남자들에게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데, 아버지로부터 이 초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팀은 주로 연애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 능력을 시도 때도 없이 써먹곤 한다.


세월이 흘러 팀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가족을 꾸리며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는데, 팀은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해서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나고 오곤 한다.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하지만 팀의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팀은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초능력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 그 아이의  출생 이전 시점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다녀오면 태어났던 아이가 다른 아이로 바뀌기 때문이다. (혹시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은 직접 영화를 한번 보시기를. 1년에 한 번씩 보아도 매번 볼 때마다 감동받는 인생명작이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온전히 보내고자 한다. 탁구를 치며 함께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따뜻하게 포옹하며 서로의 체온을 오래도록 느끼기도 한다. 볼 때마다 매번 내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장면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의 이런 독백이 나온다. “We'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함께 시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멋진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나는 엄마를 보러 가는 길에 이 영화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도 지금 엄마를 만나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해서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아쉽지만 지금 이 시간으로 다시 방문할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것이라고.


그러자 놀랍게도 모든 것들이 달리 보이고 다르게 느껴졌다. 집 식탁 위에 부주의하게 방치해 둔 먹다 남은 음식에 날파리가 모여들어 있어도, 방바닥에 오래된 신문지가 어지러이 널려있어도 더 이상 그런 것들이 내 신경을 긁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감정이 상해버리기에는 엄마와 함께 있는 그 순간이 그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들에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대신, 이미 백번도 넘게 들었을 엄마의 단골 레퍼토리를 또 들어드리면서 맞장구쳐드리고, 거칠고 건조해진 엄마의 손을 한번 더 잡아드리고, 엄마는 이미 잊고 있었던 내 기억 속의 엄마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한번 더 해드리는 것이 더 소중하고 절실한 시간이었다.


이런 생각의 전환 덕분인지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와야 하는 발걸음은 여느 때처럼 아쉬웠지만, 적어도 돌아오는 길에 '내가 또 왜 그랬을까?'를 되뇌며 자책하고 후회할 일은 없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했던 상상은 그저 상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엄마의 곁에서 보낼 수 있는 '그때 그 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마지막으로 한번 찾아와 둘러보고 가는 시간여행자다. 여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다. ‘여행자‘ 답게 우리는 우리의 오감과 마음을 최대한 열고서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름답고 놀라운 것들을 예민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감탄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고 무심하게 그냥 흘려보내거나 사소한 일들로 짜증 내며 살기에 우리의 일상은 너무도 아깝고 소중하다.


https://brunch.co.kr/@taejin-ham/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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