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방에서 혼자 지내실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매일 전화를 드리긴 했지만, 전화기 너머 “잘 지낸다”는 대답만으로 엄마의 상태를 짐작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1~2달에 한 번씩 뵈러 갈 때마다 더 나빠진 엄마의 모습에는 매번 속이 상했다.
석 달 전, 큰형과 형수님이 결단을 내렸다. 엄마를 집 근처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감사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엄마를 볼 수 있다.
매주 한두 번씩 들리는데도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부둥켜안고 울먹이신다. 바로 전날 다녀갔어도 마찬가지다. 이제 엄마에게는 ‘어제’의 기억조차도 없는 듯하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만남의 감정은 더 선명해지는 걸까.
어제는 바깥바람도 쐬어드릴 겸, 아파트 1층의 마트에 모시고 갔다. 좋아하는 단감 다섯 개와 포도 한 송이를 샀다. 마트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신다.
하지만 엄마는 짧은 외출마저도 벅차하셨다. 과일을 사서 돌아오는 길. 엄마가 힘들다고 하기에 걸음을 멈추고 보행기에 앉혀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의 고개가 스르르 옆으로 떨어지며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엄마!" 하고 다급하게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뺨을 어루만지고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의 귓가에 소리치며 어깨를 흔들었지만, 엄마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순간 뇌졸중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에 엄마에게 뇌졸중이 왔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내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라는 공포가 밀려왔다. 한 손으로 엄마가 쓰러지지 않게 지탱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다급하게 전화번호를 눌렀다. 1...1...9...
손이 떨렸다. 내 손으로 직접 119에 전화를 해 본건 처음이었다. 상황을 들은 119 상황요원이 물었다.
“숨은 쉬고 계신가요?”
엄마의 코 가까이에 귀를 대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캄캄한 절망감이 몰려왔다. 설마?
하지만 잠시 뒤에 엄마의 미약한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몇 분 뒤 깨어난 엄마는 낮동안에 드셨던 음식들을 몽땅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하게 어지러워했다.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구급차에 오르고 나서 잠시 “응급실 뺑뺑이” 뉴스가 떠올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인근 병원에서 받아주겠다고 해서 곧장 그리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엄마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최종 검사 결과에는 뇌졸중이 다시 왔거나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에 미주신경이라는 자율신경이 어떤 이유에선가 항진되면서 심박수와 혈압이 급속히 감소하고, 이 때문에 뇌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져서 생긴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응급실의 소음에 깜짝깜짝 놀라며 어리둥절해하셨지만, 이내 응급실 침상에서 곤히 잠이 드셨다.
“이제 귀가하셔도 됩니다.”
의사가 최종적으로 건네준 말은 한없이 고맙게 들렸다.
엄마를 모시고 돌아오면서, 뒤늦게 감사한 마음이 몰려들었다. 빠르게 달려와 준 119 구급대원들, 도로 위 길을 양보해 준 운전자들,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응급실 의료진들. 그리고 나를 너무도 놀라게 했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코를 골며 잠이 든 엄마에게까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두려움과 안도가 뒤섞인 오늘,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남아 있는 시간에 끝이 있다는 생각이 이렇게 선명히 다가온 건 처음이었다.
(202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