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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통화하고 한참을 울었다

by 함태진 Jan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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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몇 번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자동응답 메시지뿐이었다. 어제도 그랬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 엄마는 “혼자 외딴곳에 버려진 줄 알았다”며 울먹이셨다. 많이 당황했다. 거의 매일같이 전화를 드리지만 이젠 그조차도 잘 기억을 못 하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제처럼 하루라도 전화 통화를 건너뛰고 나면,  그다음 날은 엄마가 또 무슨 생각을 하며 혼자 힘들어하고 계실까 싶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다.


아무래도 어제부터 엄마의 전화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안함을 무릅쓰고 병동 간호사실로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한번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어머님 전화기가 방전되어 있었네요. 전원을 연결하고 다시 켜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젯밤에 내내 잘 못 주무셨어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주무시는 중이에요. 가급적이면 오후에 전화해 보세요."


방전된 전화기처럼, 엄마도 그렇게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히 몇 주 전에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신 뒤부터 엄마는 하루하루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다. 그리고 몸과 함께, 마음도 점점 사그라지고 있는 듯하다.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는 데다, 귀가 어두우셔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못하신다. 그나마 좋아하는 활자라도 좀 읽으시라고 신문이며 책이며 갖다 드렸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읽을 기력이나 정신도 없으신 듯하다.


요즘은 전화를 해도 "나 언제 집에 가느냐"는 말만 반복하시고, 다른 대화는 거의 불가능할 때가 많다. 엄마가 더 이상 예전의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다.




저녁 무렵, 퇴근길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은 깨어있으실까?' 다행히 전화기의 전원은 켜져 있는지,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과연 받으실까?’ ‘오늘은 엄마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으실까?’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뒤엉켰다.


"누고?"
"엄마~! 아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잘 못 듣는 엄마를 위해 소리 지르듯 큰 소리로 말했다.


"어 그래, 퇴근하니? 밥은 먹었니?”

요 몇 달 가까이 들어본 적 없는, 엄마의 너무나 멀쩡한(?) 대답이었다. 다행이다. 오늘 웬일로 컨디션이 좀 괜찮으신 건가? 나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안 먹었지. 이제 일 마치고 퇴근하려고요."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 많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엄마. 엄마가 우리 키우느라 고생하셨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나는 고생한 적 없다. 특히 너는 내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너 혼자 다 했지 않냐."

엄마의 말에 울컥했다. 점점 기억들을 잃어버리는 엄마는, 어릴 적 내가 잘했던 일만 기억하고, 그 뒤에 있던 엄마의 헌신은 잊어버린 모양이다.

"엄마가 늘 그랬잖아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 말씀 덕분에 내가 열심히 산 것뿐이에요."

엄마는 멈칫하더니 되물었다.

"내가 그랬었나?"


나는 핸드폰을 붙들고 계속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내려 애썼다. 오랜 옛날 기억들은 엄마에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엄마와의 대화가 이어지는 기쁨을 놓기가 싫었다. 엄마가 중간중간 잠시 웃을 때면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말했다.

“배고플 텐데,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어라.”

“배 안고파요. 밥은 무슨.”

오늘 이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내일은 대화는 커녕, 다시 엄마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조차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차마 전화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시간의 통화가 엄마를 지치게 했던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엄마. 그럼 끊을게요. 오늘 밤엔 좀 편안히 주무세요. 사랑해요."


엄마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 고맙다, 아들. 나도 사랑한다."


전화가 끊어진 뒤,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방전되었다가 다시 켜진 전화기처럼, 엄마도 오늘 잠시 깨어나셨지만 다시 언제 꺼질지 모른다. 나는 한참을 혼자 울었다.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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