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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맘 Jan 10. 2024

내 안에 또 다른 심장이 뛴다

생애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 그리고 초기 임산부의 삶

오늘은 2차 초음파 검진이 있던 날. 오전부터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께서 수원 오빠네 집을 방문해 리모델링 공사 및 시공을 위한 치수를 측정하고 가셨다. 34평 아파트이지만 40평대처럼 부엌과 안방이 넓게 빠졌다고 하셨고, 구조가 굉장히 잘 되어있다고 하셨다.

엄마는 부동산 업자답게 현관 중문, 팬트리 공간 가벽설치, 안방 붙박이장에 대해 지적했고, 나는 안방 화장실에 욕조가 없는 것과 서재에 베란다가 있어 공간활용이 답답해 확장형으로 트고 싶었으며, 오빠는 내가 한 달 전 셀프 새치염색을 하다 바닥 장판에 묻은 염색약이 지워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해했다.

내가 살고 있던 송파구 삼전동의 원룸 전셋집이 다행히 오늘 계약이 체결되어서 다음 주 금요일 중에 전세자금이 들어올 예정이라 그 돈으로 리모델링 공사와 추가가전 (건조기, 냉장고, 스타일러, 식세기, 스피커, 안마의자)과 추가가구 (소파, 침대, 서재용 책상, 의자, 피아노)를 장만할 예정이었다.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은 한샘에서 12년 일하시다 리바트로 2년 전 이직하신 분이었는데, 나는 한샘 IR 포지션 최종면접에서 최근 떨어졌던 터라 한샘 욕을 하며 친해졌다.

날 떨어뜨린 한샘... ㅂㄷㅂㄷ... ㅠㅠ


무튼 오빠는 오후 반차를 내서 날 데리러 왔고, 우리는 세인트마리 병원엘 갔는데 역시나 만차^^ 옆건물에 주차하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오빠만 점심 먹으라고 보내고 나는 차에 있었다.

고기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고, 전날 위스키 맥주 막걸리 와인 소주 데낄라를 섞어마신 것 같은 묵진한 숙취 느낌에 정신 못 차리는 심한 입덧 st...

식도락이라 세상은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적당한 반주를 즐기며 사는 낙으로 살던 나였는데, 중남미 아프리카 중국, 세상 어디를 가던 단 한 번의 장 트러블이 없고 오히려 현지 음식을 너무 잘 먹어서 살이 쪄서 돌아왔던 나였는데, 입맛이 없다니................................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배는 너무 고팠고, 1층에 있는 베트남 쌀국숫집에 가서 반미를 시켜 반조각만 겨우 먹었다.

옆자리에 앉은 산모는 혼자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너무 맛있게 쌀국수를 드시길래 입덧이 없는 그녀를 부러워하며 조심스레 몇 주 차냐 여쭈었고, 그녀는 3월 출생 예정이라고 했다........ 부럽다........

나는 이제 노산에 접어들어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오빠랑 동갑인 83년생이라고 했다;;;

어디 가서 나 노산 소리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그녀는 너무나 동안이라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남편이 세 살 연하라고 하셨다.... 또 한 번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그녀는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졌다.

심지어 7살짜리 따님도 있었고... 뱃속엔 아들이었고...

KO완패였다.


그녀는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호매실동 14단지에 사는 이웃사촌이었고, 내가 금요일에 진행하게 될 영어 재능기부 강연에 따님과 함께 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본인이 심지어 호매실동에서 영어 공부방을 5년 운영하셨다고; wow...

내가 8월 말 예정일이라고 하니 한창 더울 때 낳아서 힘들겠네요.. 하셨다.

나는 동남아에서 7년 넘게 살아서 오히려 더운 날씨를 좋아하고 익숙한 사람이라,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오히려 추운 것보다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녀도 인도네시아에서 4년 살던 경험이 있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참... 세상은 좁고 인연은 신기하다.


무튼, 근처에서 혼자 일본 라멘을 먹고 온 오빠와 함께 산부인과 접수, 예진을 거쳐 초음파 진료를 보았다.

오빠가 사준 베어파우 부츠, 어머님이 주신 골덴 바지 ㅎㅎ

진료실에 보호자인 오빠와 함께 들어갔고, 나는 가림막 뒤로 환복을 하고 초음파를 진행했다.

오빠는 가림막 뒤에서 TV화면으로 초음파를 같이 보았다.

아기집은 커져있었고, 진짜 콩알만 하던 1차 초음파 이후 좀 꼬물이 같은 게 생겨있었다;;;

그리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내 안에...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었다.........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마구마구 흘러내렸다.

그때 내 심정: 내가.... 엄마...? 엥....???ㅠㅠㅠ 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ㅠㅜㅜ 아직 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근데.... 내가 엄마라니 ㅠㅠ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내 안에 또 다른 생명체라니... 난 인생을 그렇게 잘 살지 않았는데... 솔직히 내 몸을 막 다루는 편이었는데... 술도 많이 많이 마니 마시고 ㅠㅠㅠ 담배도 피워봤고.. 스트레스도 엄청 많이 받았고... 남한테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처 준 사람들도 많았고... 독하게 살아오느라 정말 힘들었는데... 내 독기를 물려받으면 어떡하지.... 내가... 할 수 있을까...? 근데 앞으로도 계속 입덧이 있으면 어떡하지.... 나 배고픈데... 짜장면 짬뽕 탕수육 양갈비 볶음밥 돼지고기 소고기 순대국밥 먹고 싶은데 왜 입맛이 없지....


뭐 이런 느낌...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


의사 선생님은 당돌하고 야무진 산모 같아서 울지 몰랐다며 당황해했고 좋은 일인데 왜 우냐며 웃으며 달래주셨다.

나는 옷 갈아입고 나오려는데 먼저 가림막 뒤로 나간 의사 선생님이 '아니 왜 보호자가 더 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아빠가 울보네 ㅋㅋㅋㅋㅋ 애기도 울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오빠는 왜 나보다 더 우는 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오빠.... 날 달래줘야지 왜 내가 오빠를 달래줘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 참... 나보다 눈물 많은 사람 처음 봄............. 너무 웃겨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궁금한 거 없냐고 했고

난 제로맥주 마셔도 돼요? 했다.

그녀는 마셔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밥 못 먹고 입맛 없어도.... 제로맥주만 마실 수 있다면 ㅋㅋㅋㅋㅋㅋㅋㅋ난... 그거면 충분해

8달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알라야!!!!!!!!!

(태몽이 코알라가 배를 따먹는 꿈이라 태명이 알라임...)


이 엄마!!!!! 널 위해!!!! 제로맥주로 버틸게!!!

한 때 뷰티유투버로 열심히 활동했던 당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우리 채널에 출연해 주셨던 조원경 이사님께서 청담동 30년 메이크업 경력을 살려 내 결혼식 메이크업을 해주겠다고 말씀 주셨고 ♡♡♡(감사합니당 이사님 짱짱맨) 드레스도 남산에 있는 부띠크 샵을 소개해주시겠다고 해서 스드메도 다 해결되었다. (스튜디오 촬영은 작가님 섭외해서 야외 스냅으로 진행 예정, 인물 중심)

웨딩홀, 스드메, 예복과 같은 큼직한 것들이 다 처리되니 속이 다 후련했다.

굳이 플래너를 통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잖아???

알라야 건강히 만나자. 234일 남았구나.
10년 전의 젊음이 그립지만, 그때의 열정과 패기가 그립지만..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자. 간지나게 늙는 멋진 엄마가 될거야!
블로그를 떠나 결국 브런치로 오게 되었어요 ㅠ

역시나 오늘 내 한국장 포트폴리오는 파랬고, 미장은 빨갰다. 올라라!!! 환율이여... 올라라!!! 내 미국주식이여!!! 올라라!!!!!!!!!!!! 내 한국 주식도... 제발... ㅋㅋㅋㅋ


이상 6주 4일 차 산모의 태교일기였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언젠간 저도 출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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