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삶이라는 무대의 장치이자 결말
과학과 예술 그 사이 철학 1/
이 가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우림의 노래 "Happy Day"의 가사이다. 삶의 허무함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노래는, 나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주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주변보다 이른 시기에 죽음을 경험해 왔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병마와 싸우시다 돌아가시게 되었고, 10대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친할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셨다. 그렇게 성인이 되기 전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상실감을 세 번이나 겪었던 나에겐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 그 사이 철학,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생명공학 전공을 택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언젠간 죽음을 맞이한다는 명확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주는 과학에게 내가 겪은 상실에 대해서 조금은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활을 보내던 중, 25살이었던 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되었다.
평소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후로 나는 삶이란 얼마나 덧없고 예측불가능한 것인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고, 아버지가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인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보게 되었고, 어릴 적 고이 접어두었던 꿈인 예술에 다시 뛰어들었다. 아버지를 잃기 이전의 고민과 걱정들은 모두 의미가 없어지거나 아주 작아져버렸다. 망설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미뤄왔던 결정들을 실천하게 만들었고 삶에 대한 허무감을 느낌과 동시에, 도전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상실과 죽음은 삶이라는 무대에서 결코 제외할 수 없는 장치이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절망감과 그리움은 절대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지만, 언젠간 다시 나를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다. 다만 하루하루 소중한 일상에 충실하고 나의 삶의 방향키를 단단히 잡은 채 살아간다면 또다시 찾아올 상실과 죽음을 조금은 덜 괴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현재까지 인간의 과학으로 발견한 사실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이 작고 미미한 존재들은 지구의, 아니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티끌의 티끌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을 살다가 떠난다. 또, 우리가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는 한국 땅은 전체 지구의 약 0.0197%를 차지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삶이란 덧없고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100년이 지나면 사라질 존재들이 못할 것이 무엇이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해온 수많은 실수와 우릴 괴롭히는 과거 혹은 현재의 기억들은 우리의 존재보다 훨씬 더 작은 티끌들일 뿐이니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몇십 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이 넓은 지구를 탐험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배우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할 수 있다. 도전을 해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도전에 실패해도 충분히 괜찮다.
우리들은 모두 우주 먼지에 불과할 뿐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