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상은 특정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토대란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혹은 유도하는 조건들이다. 이것들은 일상 속에서 항상 자명한 것으로 우리 곁에 머물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고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면 이것들의 영향들을 포착하기 어렵다. 고대시대부터 인류에게 꾸준한 영향을 끼친 것들로는 신화와 종교, 미신 같은 것들이 있다. 현대사회 속에도 이러한 문화적 뿌리들은 토대가 되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다. 그러나 현대사회 속에서 기존의 신화와 종교들은 과거에 비해 그 빛이 바랜 것처럼 느껴진다. 합리성에 기반한 이성중심의 사고가 신화와 종교의 견고함을 와해시켰기 때문이다.
현대사회 속에서 신화를 '진지하고 엄밀하게' 사실이라 믿는 사람은 매우 적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런 것을 믿었던 걸까?" 과거의 신화들은 현대의 시각에서 너무나 허점이 많아 보인다. 손승범 작가의 <피어나는 천사 I, II>에서 현대의 해체된 과거의 신화를 느낄 수 있다.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해 주던 과거의 신화들은 해체되어 공백만이 남겨졌다. 이제 과거의 신화들은 가치관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가까워졌다. 가볍게 다가가서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숭고함이나 경건함을 느끼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의 예술품들이 제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에 비추어 볼때, 우리는 여기에서 현대 예술품들을 바라보는 소비지향적 태도 또한 반성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신화가 해체된 빈자리에는 어떠한 것들로 채워지게 되었을까? 이 공백에는 자본, 즉 물신숭배의 자리가 되었다. 현대의 신화는 이제 누군가의 성공신화와 같은 것들로 통용된다. 성공신화들은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신뢰를 부추기며 강화시킨다. 현대인들은 이제 자연의 풍요를 기원하기보다는, 일확천금을 기원한다. 준비를 통해 결과를 수용하는 서사 대신 쉽고 빠르고 간편한 만족을 기원한다. 맥락의 부재와 단발적 자극이 우리의 시야를 뒤덮는 현대사회, 이러한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평온을 바라며 단조로운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단조로움에 대한 지향은 결국 일상의 깊이와 다채로움을 느끼는 것을 어렵게 하여, 매몰된 일상 속의 혼란을 가속시키는 악순환이 된다. 이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토대이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복권을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현대인들이 기원하는 것들을 목격할 수 있다. 기대와 설렘으로 복권을 구매하는 현대인들, 아무리 당첨될 확률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복권을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일확천금을 통한 자본의 추구와 이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양면적인 환상이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남다현의 <복권방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복권에 대한 신앙, 즉 물신숭배를 느낄 수 있다. 강렬한 당첨에 대한 소망, 이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또한 작가는 예술품과 복권을 일치시키며 예술 투자자들에게 의문을 던지는 듯하다. "예술작품을 복권 사듯이 쇼핑하고 있지는 않는가?" 라며 물화되는 예술에 대한 비판을 느낄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상품들의 가치는 필요에 의해 희소하여 높은 가치를 가지기보다는, 과잉되는 것들 중에 희소하여 구별되기 때문에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 많다. 비싼 냉장고와 저렴한 냉장고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타인과 구별되기만을 위한 소비는 끊임없이 욕망을 재생산하여 물신숭배의 가치관을 공고히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물질의 소비를 강요받는다. 이곳에서는 희소한 물품을 소비할수록 뛰어난 개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개성 또한 점점 물질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되어간다. 이것이 토대의 물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품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필요할까? 이러한 의문을 김선열작가의 <쓰나미를 이기는 방법>에서 느낄 수 있다. 과잉된 시선을 걷어내어 물품들을 바라보면 그것들이 주고 있던 환상은 매우 덧없다. 작가는 쓰나미가 다가오는 환경과 치장을 위한 기호품들을 대치시킨다. 쓰나미와 기호품의 이질적 대치는 물품의 용도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것들이 과연 제 기능을 할까?" 관람자는 작가의 질문을 통해 소비하고 있는 물품들의 가치를 제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관람자가 기호품들이 극한상황이 아니라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이라 반문하면, 기호품들이 필요한 그 '일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반성 또한 가능하게 한다. 쓰나미 앞에서 기호품들은 아름답게 느껴지기보다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왜 이것들을 일상 속에서 아름답다 느낀 걸까? 관람자는 《예술, 실패한 신화》전시에서 아름다움의 물화에 대한 질문들을 꾸준히 마주한다.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예술, 실패한 신화》전시가 저는 굉장히 통쾌했어요. 평소에 제기하던 예술품에 대한 의문들을 텍스트가 아닌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름답거나 가치 있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하지만, 그것이 왜 아름답거나 가치 있는지 질문을 받으면 막막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정하는 문제인데도요. 가끔씩은 소비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구별되기를 소소하게 실천하며, 동시에 타인의 새로운 개성들도 발견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예술, 실패한 신화》전시를 어떻게 관람하셨나요? 함께 나누어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