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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Jun 06. 2024

두근두근! 어? 와! 왈칵.. - 더 발레리나

그들의 세상이 아닌, 우리의 세상


두근두근! (Pit–A–Pat)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호두까기 인형’을 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에 발레에 관심도 있었고, 공연을 쉽게 보러 갈 수 있는 서울에 살았지만 볼 수 없었다. 아마 먹고 사느라 바쁜 부모님에겐 발레 공연은 터무니없이 비싼 공연이었을 거다. 그래서 늘 그 작품이 궁금했고, 발레를 향한 호기심이 있었다. 자라면서 그 호기심은 자연스레 잊혔다가 서른이 넘은 후 필라테스 센터에서 발레 그룹 수업을 몇 번 듣다가 그 호기심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더 발레리나’의 문화 소식을 접하면서 호기심이 완전히 깨어났다. 향유하지 못했던 발레를 향한 갈증도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게 ‘더 발레리나’를 관람한다는 건, 어린 시절의 갈증과 호기심을 해소하고 비로소 소원을 이뤘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예술의 전당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트인사이트를 만난 후, 예술의 전당이 전보다 더 익숙한 장소가 되었는데도 그날은 달랐다. 마치 낯선 곳에 여행 간 것처럼 설렜다.


공연장에 들어서서 배정된 좌석에 앉아 무대를 본 순간,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숙해 보였지만, 내면의 나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두근대는 마음에 더 불을 지핀 건, 무대와 무용수들의 등장이었다. 



어?


발레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발레 공연은 막을 내려둔 채로 시작한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더 발레리나’는 막을 올린 채 시작했다. 신선한 오프닝이었다. 


‘더 발레리나’는 ‘2024 대한민국 발레축제’에 초청공연으로 선보인 작품으로 창작발레이다. 극 중 주역무용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없게 되자 신입단원이 용기를 내어 대신 해보겠다고 한다. 신입단원은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상상을 하면서 열심히 연습한다. 관객들은 기대감을 안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한편 신입단원은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무대에 오르자 긴장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순간만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을 무대에 쏟아내며 완벽하게 공연을 마친다. 공연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후련함 그리고 뿌듯함도 잠시, 신입단원은 물론이고 다른 단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습을 반복 또 반복한다.


코믹 요소와 해설도 있어서 나처럼 입문자도 쉽게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인터미션이 없는 대신 공연 시간이 70분이라 끝까지 집중하고 볼 수 있다. 발레 마스터역을 맡은 무용수의 능청스럽고 맛깔난 연기를 보는 재미까지 있으니, 다음에 또 한다면 유니버설발레단의 ‘더 발레리나’를 꼭 향유해보길 바란다.


공연 소개에 ‘무용수들의 일상을 브이로그처럼’이라는 문구가 있듯이 무대 위의 화려한 무용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무대 뒤의 모습과 끝없는 연습이 일상인 무용수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막을 올려둔 무대 위로 단원들이 등장하여 거리낌 없이 스트레칭하거나 토슈즈를 점검하는 모습에 ‘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게 공연의 연출인 건지, 오픈리허설인 건지 헷갈렸다. 발레 동작을 하기 전,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은 서커스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발레리나, 발레리노의 몸을 푸는 방식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무용수들의 일상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많았다. 수석무용수의 자랑타임, 집이 제일 가까우면서 연습에 지각하는 단원, 인사하는데 받아주지 않는 모습에 비친 경쟁심리, 동작을 해내면 서로 칭찬해 주는 모습, 팔의 흔들림과 발등 모양 등 작은 움직임까지 살피고 지적하는 발레마스터, 연습할 때 실수해서 당황하던 모습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주저앉거나 발에 쥐가 나서 괴로워하는 모습, 분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모습,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다시 연습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까지 곳곳에서 무용수들의 현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백스테이지의 모습이었다. 2층의 맨 앞자리에서 관람한 덕에 스테이지와 백스테이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서로 대비되는 모습은 아직도 강렬히 기억에 남아있다.


대중은 발레를 바라볼 때 화려함, 우아함, 꼿꼿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기회로 무용수들의 무대 뒤 모습에 주목해 주길 바라는 연출가의 바람이 느껴졌다.


신선한 연출 덕에 보기 힘든 무용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니. 발레 공연이 처음이고, 아는 것도 없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신선한 연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표정과 몸짓 연기만 볼 수 있는 다른 발레 공연과 달리 ‘더 발레리나’에는 대사도 있다. 발레마스터의 연기는 자연스러웠으나 단원들의 연기는 살짝 어색했다. 그래도 발레 공연에서만 접할 수 있는 순수함 가득한 대사 연기라서 그마저 신선한 볼거리였다.


구성도 신선했다. 액자식 구성으로 무용수들의 연습 장면에서 관객들이 공연장으로 향하는 장면과 해설 장면 그리고 작품 속 발레 갈라 장면, 마지막으로 다시 연습 장면이 나온다. 해설 후 발레 갈라 장면으로 이어질 때는 마치 새로운 공연을 보러 온 것 같았다. 공연 속의 공연이었다. 기본적인 발레복부터 화려한 의상까지 볼 수 있어 다채로운 발레복 보는 재미도 있었다.


주인공이 연습실 조명을 끄자, 무대가 암전되면서 막을 내리는 방식도 신선했다. 끝까지 무용수의 현실감 있는 일상을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해설도 독특했다. 해설자가 아닌 유니버설발레단의 단장이 나와서 해설하고, 직접 시범도 보여줬다. 시대에 따라 변화한 발레의 역사와 한국무용과 발레의 차이점을 직접 동작으로 보여주며 해설했다. 하이힐을 신고 열정적으로 시범을 보여줬는데, 관객이 발레를 쉽게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해설에 이토록 진심인 사람이 또 있을까. 덕분에 눈과 귀로 빠르게 발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와!


발레 갈라 장면에서는 ‘Paganini Rhapsody (파가니니 랩소디)’, ‘Macdowell Piano Concerto 2인무’, ‘미리내길’, ‘비연’ 작품이 나왔다. ‘Paganini Rhapsody (파가니니 랩소디)’는 우리가 잘 아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이다. 제목은 몰라도 들어보면 ‘아! 이거!’라고 외칠 것이다. 그만큼 귀에 익은 선율이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인 분노를 표현한 무브먼트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분노를 넘어서 바닥으로 치닫는 감정까지 느껴져서다. 분노를 글이나 표정, 행동, 가수의 춤으로는 봤어도 발레로 본 건 처음이어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Macdowell Piano Concerto 2인무’는 스토리 없이 오로지 음악을 표현하는 네오클래식의 특징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문훈숙 단장의 해설을 듣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음표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인간의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움직임이 음표로 보였고, 심지어 한 음표의 박자 길이에 맞춰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리듬과 박자까지 인간의 몸에서 느껴지는 걸 보면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건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라고 생각하며 감탄했다. 몸짓에 의해 펄럭이는 스커트마저 음악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감명 깊게 관람한 작품이었다. 


첫 번째로 감명 깊이 본 작품은 ‘미리내길’과 ‘비연’이었다. 이 두 작품은 앞의 작품과 달리 한국적인 특징이 돋보였다. 음악도 국악으로 선곡하여 한국 전통의 멋과 발레의 매력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동서양의 만남은 안무에도 있었다. 문훈숙 단장의 해설에 따르면, 상체를 앞으로 수그리는 동작이 많아 단정하고 조신한 느낌이 강한 고전무용과 상체를 활짝 여는 동작이 많아 천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한 발레가 하나 된 걸 볼 수 있었다. 국악과 발레가 어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고전무용과 발레가 조화를 이룰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해설을 들으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이 흘러나오고, 움직임이 시작되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유병헌의 실력이 돋보였다. 조화로운 동서양과 줄거리와 감정을 세밀하게 그린 무용수들의 연기와 움직임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미리내길’은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감정이 세밀하게 묘사된 작품이었다. 발레리나 뒤에서 발레리노가 함께 연기하는데, 진짜 죽은 남편이 그림자처럼 아내의 뒤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국악에서 느껴지는 한, 애달픔까지 더해지니 슬펐다. 내가 겪은 듯 가슴이 미어졌다. 


‘비연’은 네 쌍의 남녀가 인간의 기상과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치솟는 감정에 중점을 둔 만큼, 힘차고 강한 안무가 특징이었다. 청춘의 열정과 활기와도 같아서 그 기운이 내게도 닿아 힘이 났다. 한편으로는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청춘이기에 괜스레 서글펐다.



왈칵..


‘더 발레리나’를 보고 느낄 것은 감탄과 경이로움, 신비로움, 여운을 예상했다. 눈물과 깊은 감동은 없었다. 작품에는 반전이 없었지만, 나에게는 반전이 있었다. 예상에 없던 감정을 느꼈다는 거다. ‘Macdowell Piano Concerto 2인무’가 나올 때부터 조금 울컥했지만, 감정을 잘 제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미리내길’과 ‘비연’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와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여 울고 말았다. 


발레를 보고 울 줄이야....


반전이었다. 당황스러운 내 모습에 실소가 함께 터져 나왔다. 그래도 겨우 감정을 추슬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과 그 아래로 연습에 매진하는 단원들의 모습에 또 눈물이 났다. 공연장에서 나오고 나서도 감정이 가시지 않아 목소리가 떨렸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연신 침을 꿀꺽, 삼키는 중이다.


구성부터 연기, 안무, 음악에 담긴 감정이 내게 잘 전달된 모양이다. 여기에 공감되는 부분까지 있으니,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후회되진 않는다. 그만큼 ‘더 발레리나’를 온 마음으로 향유했다는 증거일 테니. 이런 경험은 쉽게 오지 않으므로 귀하게 여겨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더 발레리나’는 공연을 마친 단원들이 다시 연습실에 돌아와 무대만을 위한 노력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난다. 주역무용수 대신 무대에 올랐던 신입단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똑같이 연습에 매진할 뿐이었다. 화려한 결말도 없었다. 그럼에도 화려하게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오롯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결말은 그저 그들의 일상이며, 현실이기에 포장지가 없어도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함께 본 일행도 마지막 장면이 가슴에 와닿았다고 했다.


발레는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만이 작품이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무용수들의 일상 자체도 예술작품이었다. 한순간만을 위해 연습하고, 노력하는 일상 그리고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다시 반복되는 일상은 무용수뿐만 아니라 대중의 일상과도 같았다. 이로써 무용수의 일상은 고상하고 화려할 거란 예상도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무용수들의 세상은 ‘그들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이었다. 예술인이든, 아니든 모두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성장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알고 보면 다 비슷비슷하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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