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졌다.

(서)른춘기 그리고 늦깎이 방황

by Eloquence

이런 게 서른에 맞이한다던 사춘기인가 싶었다. 생각과 고민은 더 늘어가고, 불안하고 초조했다.

꿈도 이루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름 나쁘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서글프고, 지치고, 힘들게 느껴졌다. 겁이 많아도 하고자 하는 일 앞에서 만큼은 겁이 없었는데, 모든 게 다 무서워졌다.

하고 싶은 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도 모자라서 뒷걸음질 쳤다.


또래 친구들이 진로 고민을 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는 난 이미 그 고민을 끝냈다면서 하지도 않더니, 다 늦어서 길을 잃고 헤맸다. 이십 대 초중반에도 비슷한 순간이 잠깐씩 있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목표가 있었다. 과정과 결과에 따른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다. 방황이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방황이었기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여행 같은 방황이었다.


그때와 다르게 서른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맞닥뜨린 방황은 목표가 없어서 방향도 알지 못했다. 막막했다. 혼자 하는 늦깎이 방황이라 외로웠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못했고, 동질감도 없었다. 진로 고민과 방황은 이미 끝난 채, 현재와 미래를 잘 다져놓고 있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나만 혼자 방황했다. 그러다보니 더 조급해져서 길도 모르면서 무작정 뛰어갔다.


그러다 더 헤매고, 다치기만 했다. 빨간불인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다가 더 가지 못하고 가운데에서 발만 동동 대고, 경적 소리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로 인해 겁을 잔뜩 먹고 주저앉은 것만 같았다.


(서)른춘기와 늦깎이 방황과 맞서기에는 이미 내가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진즉에 알지 못했다. ‘이것 또한 대가인가?’ 켜켜이 쌓여 있던 머릿속의 눈들이 생각났다.


이대로 더 놔뒀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그 무서운 예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왜 무시할 수 없었을까.

생존본능이었을까. 일말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결국, 반강제로 유일한 방법인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머릿 속의 눈들을 없애기 위해.

나를 살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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