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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e Oct 31. 2023

아직 플롯을 짜는 중입니다

#습작 #인생 #소설 쓰기 #인생 쓰기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플롯을 짰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눈에 그려지듯 선명하게. 고등학교 시절, 문예특기자 전형을 준비할 때 소설 창작을 알려주시던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플롯의 사전적 의미는 인과관계에 기인한 사건의 이야기이다. 나에게 플롯이란 글을 쓰기 전에 인물, 스토리, 구성을 구상하는 단계이다.

그 습관은 문예창작학과를 들어가서 습작을 할 때도 이어졌다. 나는 반쪽짜리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소설을 쓸 때는 기성 작품 흉내를 많이 냈다. 익숙한 문체와 스토리가 나만의 것인 척했다. 그러다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최소한 소설을 쓰지는 않게 되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글은 자기소개서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서이다. 난 아직도 텍스트와 함께하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다. 편집자를 희망해서 매해 지원서를 냈지만 서류 심사에서 줄기차게 낙방했다. 그러다 나의 적성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마케팅의 길로 들어섰다. 4년 동안 마케팅 업무를 하며 나와는 맞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마음의 방향을 바꾸었다. 내게 길이 열린 것은 내가 그곳으로 향했기 때문이고, 그 길도 날 원했기 때문이라고.

내 인생은 내가 쓰던 소설의 플롯처럼 예상대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플롯을 짠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문득 인생이 플롯대로 가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해 계속 플롯을 짠다.

'브랜드의 가치를 전하는 전략적인 마케터'라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혹시 내가 익숙한 소재와 스토리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그럴 때면 독특해 보이기 위해서 넣었지만 남들에게는 형편없어 보이는 문장처럼, 책과 글에 관한 이야기를 넣는다. 저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케터입니다,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하면 잘못한 아이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그런 이상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책은 아무런 대답도 없지만 그것에 정답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잘하는 것이 없었고 매사 소극적이었던 나는 줄곧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말도 늦게 깨우쳤고, 구구단도 늦게 외웠고, 받아쓰기도 잘 못했으며, 운동신경도 없었다. 이런 나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백지는 너그러운 들판이었으며, 정답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현명한 선생님이었다.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소설집을 가슴에 안고 글쓰기 학원으로 가고 있었다.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나는 그때 내 인생이 정해졌다 생각했다.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그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의 일을 미화시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두근거림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로부터 10년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어떤 좋은 여행을 가도, 어떤 재밌는 일을 찾아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글을 처음 쓰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만큼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은 없었다.

난 사실 회사생활이 불리한 성격이고 별로 다니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새직장을 구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립하기 위해서이다. 독립할 준비를 해서 세상에 나갈 예정이다. 글을 쓰는 마케터가 될 것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길을 선택하여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돈을 많이 벌거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반드시 가슴이 뛰는 일을 찾으라고. 

플롯의 핵심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눈에 그려지듯이 선명하게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완성에 대한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나는 플롯은 오래 짜고 글은 빠르게 써 내려가는 편이었다. 플롯을 짤 때는 항상 고민이 많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자신 있었다. 나는 아직 플롯을 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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