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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미 Nov 11. 2020

Myself, 김한별

READ YOU 인터뷰 #2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 용기를 나누고 싶다.




김한별씨의 전공은 유아교육이다. 그녀가 아이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밝게 웃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엔 경계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다가온다고. 아이에게 경계를 풀고 스스로 한 발 다가올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녀의 따뜻한 기다림은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다.
그녀에게도 여유가 필요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람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잠시 모든 걸 내려두고 여행을 하며 여유를 가지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자기자신을 조금 존중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길가의 핀 꽃만 봐도 행복하다고.




ㅣ유아교육과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무엇인가요?

학교를 딱 졸업했는데 제가 학교 다닌 동안 한 게 없는 거예요. 그랬더니 졸업하고도 할 게 없는 거죠. 진짜 그냥 먹고 자고 싸고. 남들은 대학을 가지만 저는 '굳이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러던 중에 아는 언니가 '대학은 안 가?'라고 물어봤어요. 굳이 무언갈 배우려고 가지 말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대학을 갈 수도 있다면서. 그 때 대학을 가볼까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냥 아이들에 대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어요. 엄마한테 이 얘기를 하니까 유아교육과를 추천해주셨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죠.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어요. 심지어 유아교육과를 졸업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선생님이 된다는 것도 몰랐으니까.(웃음) 그냥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배우고 이런 걸 알고 싶었어요. 어릴 적 어린이집 다닌 기억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 때 선생님이나 친구들이랑도 아직까지 연락하고 만나고 해요.

ㅣ대학에서 뭐가 가장 힘들었어요?

시험이요. 저는 대안학교를 나왔어요. 저희 학교에는 시험이란 게 없었거든요.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말도 대학에서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그게 저한테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시험 칠 때마다 장염에 걸렸어요. 너무 긴장을 해서. 청심환까지 먹고.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ㅣ지금은 괜찮나요?

지금은 다 놨어요.(웃음) 하다보니 또 나름 요령이 생겨서. 익숙해진 것 같아요.

ㅣ유아교육과는 어떤 것들을 배워요?

정말 다 배워요. 국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그 교수법들을 배우는 거죠. 저는 동화책에 수학이 있다는 걸 이 때 처음 알았어요. 단순히 수학을 배우기 위한 책도 있지만 그런 것 말고 말이에요. 등장인물이 조금씩 커진다든가, 한 명씩 늘어난다든가. 이런 게 수학적 요소가 되는 거예요. 어른들이 보기엔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게 다 교육이죠.

ㅣ 아직 학생이면 실습같은 것도 많이 해보시나요?

네. 저희 학교는 실습이 2번 있어요. 어린이집에 가는 보육 실습이랑 유치원에 가는 교육 실습이요. 각각 6주, 4주 동안 했어요.

ㅣ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나요?

제가 직접 수업을 진행해본 적이 있어요. 한 3번 정도? 저희는 실습생이라 주로 보조교사 역할만 하는데 담당선생님께서 가끔 직접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거든요. 그 중에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주제가 '해양교통기관'이었는데 잠수함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수업방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교구까지 만들었어요. 얇고 투명한 필름지에 잠수함을 그려서 아이들이 직접 색칠할 수 있게 했어요. 직접 색칠한 잠수함을 작은 수조 속에 넣으면 내 잠수함이 바다를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실감나게 하려고 수조에 돌이랑 해초 같은 것도 넣어서 진짜 바다처럼 꾸몄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좋고. 진짜 뿌듯했어요.



ㅣ직접 만든 교구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교구가 있나요?

자동차 엔진이나 와이퍼 같은 부품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부직포를 잘라서 직접 만들었어요. 꽤 크게요. 그 때 새벽 4시까지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만들고 나니까 너무 뿌듯했어요. 교구회사를 차려볼까 생각도 했어요.(웃음) 요즘 교구업체들이 되게 많거든요. 다들 거기서 사서 써요. 특히 외국은 그런 경향이 더 크고요. 아이들을 보육하는 게 목적이지, 교구를 만드는 것은 교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문화 차이겠죠?

ㅣ교사로서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부담감을 갖게 되면 제가 아이들에게 너무 부자연스럽게 다가갈 것 같더라고요. 저 어렸을 때만 생각해도 선생님들이 제 인생에 영향을 안 미친 건 아니지만 워낙 어릴 때니까 잊혀지는 것도 많으니까요. 적당한 부담감은 괜찮겠지만 너무 과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한 것 같아요.

ㅣ인간은 성선설일까요, 성악설일까요?(웃음)

저는 둘 다 아니라고 봐요. 아이가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부모의 영향이 제일 크겠죠.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해주고,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어떤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는가가 중요한 거죠. 그만큼 주변의 어른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교사에 대한 책임감이 큰 것 같네요.(웃음)

ㅣ전공자로서 학부모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동화책이 있나요?

<그건 내 조끼야>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에도 수학적 요소가 들어있어요. 생쥐가 빨간 조끼를 입고 있는데 생쥐보다 더 큰 동물이 와서 조끼가 너무 예쁘다고 한 번 입어봐도 되냐고 물어봐요. 근데 입었는데 조금 끼는 거죠.(웃음) 조금 있다 다른 더 큰 동물이 와서 조끼를 또 입어봐요. 그렇게 점점점 조끼가 늘어나서 마지막엔 코끼리까지 나와서 그 조끼를 입어요! 대략 이런 내용인데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어요. 비슷한 장면들이 계속 반복되거든요. 동물들의 표정과 조끼가 끼는 장면을 너무 잘 표현한 것 같아요.





ㅣ공통 질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사소하게 행복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그냥 길을 걷다가 랜덤으로 노래를 틀었는데 지금 이 거리의 분위기와 노래가 딱 맞아 떨어졌을 때? 아니면 예쁜 꽃을 볼 때? 그 때 너무 행복해요.

ㅣ그럼 한별씨의 인생은 전반적으로 행복한가요?

요즘은 좀 행복해요. 최근에 여행을 다녀오고나서 정말 바뀌었어요. 제가 여행을 가기 전에는 진짜 바닥을 치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들 때문에 정서적으로 정말 바닥을 달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하루가 지나가서 그냥 사는 거지, 내가 스스로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근데 여행을 하면서 힐링하고 와서 그런지 요즘은 행복해요. 전에는 뭘 해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다 행복해요. 재밌어요.

ㅣ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음,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인데. 빨리 가정 꾸려서 남편이랑 꽁냥거리면서 살고 싶어요.(웃음)

ㅣ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그건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최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콜드플레이(Coldplay)'라는 밴드예요. 지인 추천으로 알게 되었는데 노래가 좋더라고요. 2017년에 내한공연을 갔는데 제 생애 첫 콘서트였어요. 그 때 푹 빠졌어요. 내가 음원으로만 들었던 음악을 실제로 듣는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라이브잖아요? 라이브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요. 연주자가 그날따라 더 세게 치고, 작게 치고 그 사람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 날에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듣는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그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정말 너무 기뻐서. 근데 옆에 친구들이 있어서 쪽팔려서 울지는 못하겠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제가 공연을 보러 갔을 때가 딱 4월 16일이었어요. 제가 'Yellow'라는 곡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 곡을 연주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추는 거예요. 그러곤 스크린에 노란 리본을 띄우고 공연장에 있는 모두가 10초간 묵념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묵념이 끝나고 노래의 클라이막스가 펑하고 터지는데, 그 때 정말...


ㅣ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첫 문장을 뭐라고 쓸 것 같으세요?

갑자기 왜 이 단어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제 생각을 얘기할 때 되게 조심스러워요. 항상 '혹시..?' 이렇게 하거든요. 내 생각이 선뜻 나오지가 않아요. 내가 고른 음식이 맛없으면 어떡하지? 내 생각이 별로면 어떡하지? 좋게 말하면 배려지만 어쩌면 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늘 선택장애가 와요.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그래요.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도 늘 '아무거나 시켜도 괜찮아'라고 하거든요. 근데 어느날은 엄마가 '니가 먹고 싶은 걸 생각해'라고 얘기했을 때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나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데도 잘 안 되네요.(웃음)


혹쉬...?




노력이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라면 여유는 현재의 나를 위한 것이다. 지치지 않으려면 노력과 여유,  중간을  찾아야 한다. 미래의 나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여유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을까, 낙오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계속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는 바빠도 너무 바쁘게 산다. 여유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성숙해진 내가 분명 지금의 나보다 훨씬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나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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