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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May 03. 2020

기억은 모여 추억이 된다.


나는 외출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다. 무슨 옷을 입을까부터 시작해 어떠한 경로로 이동해야 최단 거리 대비 고효율을 낼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 감히 예상하건대 이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집순이의 정석이지 않을까.

맞다. 사실, 내가 그 집순이다.    


그런데 막상 집 밖을 나오니 참 좋다. 그리 쌀쌀하지도 덥지도 않은 적정 실외온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만, 눈으로도 알 수 있다. 오늘 하늘이 미세먼지 없이 얼마나 맑은지. 덕분에 고개를 꺾어 바라본 하늘 너무나도 쾌청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잔머리가 볼을 간질이는 것조차 얼마나 기분 좋은지.

바지 밑단을 수선하러 들린 가게 사장님의 퍽 장난기 가득한 안부 한 마디는 오늘 하루의 외출 시작을 포근하게 알렸고 때마침 도착한 정류장엔 기다렸다는 듯 도착한 버스까지. 입안 우물거리는 사탕을 왼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볼마다 녹여 먹는 오후. 이렇듯 몸도 마음도 모두 달콤한 오늘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 달 만의 외출. 가장 큰 이벤트는 한옥마을 가기. 

그동안 너무나 가고 싶어 매번 도전했으나 여러 상황이 겹쳐 매번 풀이 꺾였었다. 집에만 있었던 지난날들. 물론 나는 타의적 집순이가 아니므로 딱히 가지 않아도 큰 이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가끔 사람이 콧구멍에 바깥 공기를 넣어야 하지 않겠나. 가령 방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는 것처럼.   

  

도착한 장소에 맞잡은 두 손에 두런두런 담소를 피우며 이곳저곳 사람 구경, 한옥 구경, 자연 구경. 실은 이 곳에 가장 오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청현루였다. 마을안쪽으로 들어가 조금 외곽으로 나오면 긴 다리 위 정자 하나가 있는데 그곳의 이름이 청현루다. 지난날 우연히 알게 된 곳으로 볕이 쨍한 낮에 오면 정말 좋겠다 싶어 내내 기억하고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

드디어 오늘에서야 볕 가득한 오후 날, 마음껏 이곳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마음이 가득 행복이 차올랐다. 그렇게 한동안 정자 위 신발을 벗고 바람에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함께 바라봤던 전경.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아마 오늘 외출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닌 더욱더 짙어질 오늘의 기억이었다.     
‘오늘을 기억한다는 것.’ 이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기꺼이 취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예쁜 것을 보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핸드폰에 메모한다.
다른 날, 그날의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사진첩에 오늘의 기억을 남겼다. 푸른 하늘 위 솜사탕같이 가볍고 새하얀 구름. 색색의 단청이 가득한 기와지붕, 그 끝에 가느다란 줄로 달린 풍경과 부는 바람에 제 몸을 흔들며 내던 소리까지. 이렇게 생의 파편 한 조각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 날 하나의 생이 완성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그때 이생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나만의 추억이라 부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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