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흔해 빠진 그, 것
나는 눈이 작은 편이라,
평소 나보다 큰 눈을 좋아하지 않고 내 눈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너와 나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런 내 눈이 작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웃을 때 너와 내가 닮았다는 말이
가만히 있어도 너와 나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이
절대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너와 내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나를 유약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네가 하는 말이라면, 나는 바보가 되어도 좋았다. 네가 하는 말이라면, 내 취향은 곧 네 취향이기도 했다.
대부분이 내가 너의 말이라면 픽 하고 웃어넘기거나 스르륵 녹는다는 것을, 너는 분명 알고 있었다.
사실 나의 신념이니 가치관이니, 네 앞에만 서면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그저 네 옆에만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신념이자 가치관이었으니.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었고, 너는 갑, 나는 정이었다.
너를 갖고 싶었다.
옆에 두고, 그런 너의 옆선을 가장 가까이에 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했다.
남자와 여자처럼 일차원적인 개념이 아닌 너를 한 사람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런 너의 옆을 지키고자 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네 옆을 지키고자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했다.
열심히 하면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난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끝없이 줄기만 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넌 황새고 난 뱁새니까. 딱 그 꼴이었다. 내 가랑이 한없이 찢겨 나간 꼴.
누군가의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덜컥 겁이 났겠다 싶었다.
상대방이 전력을 하면 할수록 주춤, 주춤. 뒷걸음만 치던 너를, 나는 왜 보지 못했을까.
그랬던 나는 그런 너와 헤어졌다.
그리고 남들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너의 이기심을 탓했다. 너의 이기심에 못 이겨 자꾸만 숨고 도망가는, 겁 많은 너를 탓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손을 놓은 건 너라는 사실.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네가 잘 지내길 바란다.
한 때 나의 연인이자 뜨겁게 사랑했던 네가 여전히 멋지게 나이들길 바란다.
그러다 언젠가 우연히 네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
끄덕.
잘 지내고 있구나.
그거면 충분하다.
저버린 태양은 그거면 충분하다.
끄덕.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