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미 Mar 03. 2020

나의 소중한 엉덩이에게


머리 하나 믿고 공부를 안 할 수가 있나, 그럴 머리가 없는걸. 책벌레처럼 기본서가 닳도록 볼 수가 있나, 이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이니까. 이처럼 믿을 머리도 없고 책벌레가 아닌 사람인 내가 적어도 자신 있는 부위는 엉덩이다. 잠깐, 여기서 엉덩이가 자신 있다는 의미는 동그랗고 예쁜 애플힙을 말하는 게 아닌 무게로 따졌을 때 엉덩이 하나는 끝내주게 무겁다는 의미다.


이 엉덩이야 말할 것 같으면 유년 시절부터 엄마의 효자손과 선생님의 주걱 매질로 단련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거치는 수능 시절에 강제 자습 덕에 먹고 자고 마시는 것 모두를 책상 앞에서 해결한 의지의 엉덩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경험이라 하지 말자. 내 친구 K는 의자에 불이 붙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제 자리에 단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으니.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기본이고 쉬는 시간에 자리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 유일하게 그 엉덩이가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급식 시간이었다. 


그래, 나는 너무도 엉덩이가 무겁다. 그리고 이 말은 나의 쾌변과 맞바꾼 것과 같은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죈 종일을 책상에 앉아 있다 신호가 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면, 지나가는 어느 토끼든 모두가 제 친구인 줄 알고 인사할 만큼 너무나도 야위고 보잘것없는 변을 본다. 바깥세상에선 이걸 토끼 똥이라고 부른다지. 이럴 때 바로 세상의 비유가 나에게 통용되지 않다 말해도 되는 건가. 이 신호도 나에겐 겨우 온 것이니까. 그래도 덕분에 꽤, 꾸준히, 남들보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능력치가 상승했으니. 솔직히 이 정도면 경험 말고 경력으로 쳐줘도 퍽 괜찮은 능력치 아닌가.


대학 때 만난 친구 B도 신기하다는 듯 늘 나에게 물었었다. 어떻게 그리 의자에 오래 앉아있을 수 있냐고.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을 주고 “에이 아냐, 나도 이제 좀이 쑤셔 좀 일어나려 했어.”라는 답을 했다. 설마, 내가 힘을 주는 탓에 덩달아 엉덩이의 그 작은 구멍마저 사라져 이 새빨간 거짓말을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건가. 아직 일어나려면 빌린 PMP로 영화 한 편 봐도 될 것 같던데 뭘.

공부에는 끝이 없단다. 덕분에 학창 시절 안 한 공부 지금도 지그시 앉아서 진행 중이다. 동시에 나는 오늘도 이 야무진 엉덩이로 얻은 학문의 지식을 겸손히 머릿속에 넣는다. 오늘도 쾌변은 무슨, 소리 없는 아우성만 외칠 게 뻔하다. 나의 엉덩이에게, 언니가 늘 고맙고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비의 종착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