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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Oct 11. 2021

응급의학과 이야기

숨 가쁜 군상의 단상

0.

 정면 신호등의 파란 불을 향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사거리에 들어서며 오른쪽을 돌아보니 빨간 불이었다. 당연한 그럴 터였는데, 난데없이 하얀 시빅 (Honda Civic)이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숨을 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그 새하얀 본네트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주마등'이라는 클리셰적 표현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 짧은 찰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쩌지, 녀미한테 인사도 못 했는데.' 

 '구름이랑 보리는 어쩌지'

 '녀미한테 비트코인 파는 방법도 차마 알려주지 못했는데.'

 '오늘은 의대생으로서가 아니라 환자로서 응급실로 출근하는 건가?'

 '아 저 새끼 운전 엿같이 하네.'

 '하, 진짜 이렇게 한순간에 가는구나.'


 그렇게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사거리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내 자전거는 저기 던져져 있고, 하얀 차는 저기 인도에 부딪혀 있었다. 


 '오... 나 살았나? 인도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 차는 '끼이익' 하고 타이어가 역겹게 비벼지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


 사거리는 얼어 있었다. 빨간불, 초록불이 두어 번 바뀌는 동안에도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자 여럿이 차에서 나와 나에게 와 주었다. 괜찮냐며, 다치지 않았냐며,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차에 있던 물 한 병을 건네주고, 아직 정신없는 나와 나의 자전거를 인도까지 옮겨 주었다. 놀랍게도 나는 괜찮았다. 정신이 들고 몇 분 전 일을 되새겨 보고 있으려니, 그 차와 1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마지막 순간에 자전거를 그 차를 향해 던지고 오른쪽으로 구른 기억이 떠올랐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용케 자전거도, 나도 멀쩡했다. 극도로 수축한 온몸의 근육이 아프고 바르르 떨렸지만, 나는 살아 있었다. 자전거도 핸들이 꺾인 것 말고는 멀쩡했다. 오늘도 녀미가 싸준 도시락을 먹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다. 온전히 정신이 들고 나서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EM (Emergency Medicine: 응급의학과) 로테이션의 마지막 날이었다.


1.

 그 누구도 나와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어텐딩 (Attending: 전문의) 말을 따라 곧바로 환자를 보러 갔다. 아직도 조금 멍한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ER (Emergency Room: 응급실)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바빴다. 이 수많은 사람들 -- 의사, 간호사, 테크니션, 청소 관리사, 환자, 보호자, 응급구조사, 소방관, 경찰 -- 이 정말로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숨을 크게 쉬고, 시원한 얼음물을 한 모금 크게 들이마시고, 나 또한 그 복작거리는 흐름의 일부가 되었다.


2.

 복통을 호소하며 찾아온 첫 환자는 다행스럽게 큰 이상이 없었다. 배를 꾹꾹 눌러보아도 특별히 유발되는 통증이 없었고, 설사를 하기는 했지만 피가 섞여있다던가 토를 한다던가 심하게 열이 난다던가 긴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최근 며칠, 이렇게 다른 심각한 증상이 없이 배가 아파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 COVID-19 외에도 늘 그랬듯 이 세상을 돌아다니던 바이러스의 영향인 것 같았다. 그는 수액을 한 봉지 맞고 집에 돌아갔다.


3.

 사색이 된 중년 여성이 복도 "K" 자리에 앉았다. 모든 응급 환자에게 병실이라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앞으로 의사, 간호사, 테크니션, 응급 구조사들, 경찰, 소방관, 초음파 기계 등이 바쁘디 바쁘게 오갔다.

 '무슨 일이신--?' 나는 물으려다 실패했다.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 응급 구조사가 소리를 빽 지르는 환자를 들것에 싣고서 나와 환자의 사이를 가로질러 갔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심장이 아프고 숨 쉬기 힘들어요,' 

 내 심장이 철렁했다. 1분 남짓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2시간 지속된, 어깨까지 전해지는 심장 통증, 숨쉬기 어려움, 어지러움, 고혈압/고지혈증의 병력, MI (Myocardial infacrction: 심근경색)에 해당될 수 있는 증상들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어텐딩 (전문의)에게 찾아갔다. 마치 내가 심장마비가 올 것 같은 기분으로 그에게 환자의 증상을 보고했다. 당장 ECG (Electrocardiogram: 심전도)와 트로포닌 (심장 근육 손상의 지표)을 측정해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속 골든 타임의 시침이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었다.

 어텐딩은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어 그래 잠시만, ' 하면서 이전 환자 컨설팅을 마지고 십여 분 후에야 환자와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기가 막히게 간호사가 ECG를 재고, 순식간에 피를 뽑아 검사를 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영상의학 테크니션이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그의 흉부 X-ray를 찍었다. 어텐딩이 이다음 환자를 보러 간 사이, 나는 ECG와 X-ray 결과를 돌려받았다. 이렇게 정상일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정상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니 피검사 결과도 나왔다. 오, 너무나 건강한 환자였다. 심지어 이전보다 당뇨 수치가 좋아져 있었다. 

 환자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고 크게 걱정해야 하는 일 -- 심근경색 --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환자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정말 다행이라면서. 최근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았는데 그 때문인지, 심장에 큰일이 났는지 알 수 없어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어텐딩도 다시 찾아와 잠깐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환자는 집에 갔다.

 어텐딩이 내게 말했다. 

 '이 차트에 비행기 사인 보이지? "Frequent Flyer (비행 단골 고객)" 이란 뜻이야. 한 달에 한 번쯤은 심장이 아프다면서 와. 그리고 항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

 '그럼 병원비가 엄청나지 않아요?'

 '당연하지. 좋은 보험이 있거나 아니면 -- '


 응급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환자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간호사에게 마구 욕을 했다. 

 '나중에 더 얘기하자, ' 어텐딩은 말했다.


4.

 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도 있구나 싶은 환자가 실려 왔다. 길거리에서 술병을 막 깨고, 소리를 지르고, 주변 행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신고를 받고 경찰/소방관에게 실려 온 사람이었다. 약을 한 사발 들이부은 노숙자였다. 어텐딩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최고 frequent flyer 중 하나지.'


 뭐라 말하는지 알 수도 없고,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눈에다 빛을 비춰도 동공이 반응하지 않았다. 제대로 마약성 진통제에 쩔어 있는 환자였다. 쉴 새 없이 몸부림을 치는 환자의 사지를 들것 코너마다 묶어 놓았다. 그 상황에도 간호사는 정말 놀라운 스킬로 피를 뽑았고, 피검사 결과 그는 코카인, 펜타닐, 그리고 헤로인에 잔뜩 취해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텐딩이 헛웃음을 지으며 동료 의사에게 말을 건네었다.

 '요즘 저 세 조합 (코카인, 펜타닐, 헤로인)이 유행인가 본데, 대체 진정제와 각성제를 섞으면 무슨 효과가 있기는 한가?' 

 '엄청난 롤러코스터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동료 전문의는 대답했다. 길거리에도 시간에 따라 마약의 유행이 있는 것이 그저 놀라웠다.


 피검사에 CK (Creatine Kinase, 근육에 존재하는 효소 중 하나) 농도가 눈썹을 한껏 올리게 될 만큼 높았다. 많은 코카인 사용 환자가 그렇듯 끔찍하게 몸부림을 치다가 근섬유들이 파괴된 것이었다. 딱히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손발을 잘 묶어두고 그가 소리 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것이 잦아들기를, 약에서 깨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까 얘기하다 만 것, 이렇게 아주 높은 확률로 좋은 보험이, 아니 어떤 보험도, 돈도 없을 이 사람들이 여기 오면 어떻게 될까?' 어텐딩이 물었다. 나는 답이 없었다. 

'올해 세금 냈지? 나도 냈어. 그래서 이 사람이 살 수 있지. 돈 없는 사람들의 primary care에 온 것을 환영해.'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5.

 또 길에서 생활하는 여성 환자가 찾아왔다. 같이 길에서 생활하던 남자 친구에게 맞았다고 했다. 얼마나 오래되었냐고 하니 나흘이 되었단다. 왜 진작에 신고하지 않았냐 물으니, 그의 강아지를 돌봐주고 있었다고 했다. 강아지를 돌려주기 전에 신고를 하면 자기가 떠맡아야 하니 일단 돌려주고 신고를 하려고 했단다. 이제 돌려주었으니, 그를 신고하고 고소하기 위해 의료 리포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와 어텐딩, 그리고 간호사, 사회 복지사를 찬찬히 째려보면서 얘기했다.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자 친구는, 나와 어텐딩과 간호사와 같은 동양인이라고 했다. 자신한테 뭐라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아시안은 나쁜 놈들이라면서. 


 그래서 백인 간호사와 어텐딩이 그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너네는 역시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살만 뒤룩뒤룩 찐 특권층이라며 지랄을 했다. 이토록 광역으로 어그로를 끄는 데 능력이 있는 것도 참 기막힌 일이었다. 어텐딩은 그에게 경찰 리포트를 써주기 위해서는 아픈 부분 엑스레이를 찍어서 상해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어느 특수 기관이 자기 몸 안에 중요한 기계를 설치해 놓아서 방사선을 맞으면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고 어텐딩은 얘기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침대를 한참 걷어차더니 그는 응급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어텐딩이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역시 우리가 낸 세금, 이렇게 잘 쓰이고 있단다.'


6. 

 또 실려왔다. 길에서 생활하는 환자. 아이고 이번에는 또 무엇인가.

 언뜻 보아하니 팔이 아파 보였다. 이번엔 그래도 보호자와 같이 왔다. 대충 당장 죽진 않겠거니 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가 응급 상황이겠지만, 의료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다.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람들, 수술실로 보내야 할 환자들, 영상을 찍어야 할 사람들, 아니면 잠시 둬도 죽지 않을 사람들 등등, 응급실에도 순서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또 심장이 아픈 사람들, 숨을 못 쉬는 사람들, 열이 엄청나게 많이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한동안을 복도 "G"에 앉아 있었다.


 참다못한 보호자가 나를 붙들었다. 기다린 지 한 시간이 되었는데 언제쯤 환자를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정말 미안한데 응급 환자가 너무 많다고 나는 말했다. 그는 자기 환자는 응급이 아니면서 화를 냈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얘기 나눈 김에 무슨 일인지 듣고는 가서 어텐딩에게 상황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보호자에 따르면 2년 전, 환자의 마약 투약을 위한 주사기의 재사용으로 인해 왼쪽 이두근 부분에 심한 cellulitis (봉와직염)와 abscess (농양)이 생겼단다. 그때 상처를 째고 고름을 짜 내었는데, 또 이주 전 다시 생겼단다. 그때 의료진이 제대로 치료를 못 한 것이 아니냐고 나를 다그쳤다. 나는 그런 일이 있어서 정말 미안하다며, 이번엔 최대한 치료를 잘해 주겠다며 사실은 장담할 수 없는 장담을 하고야 말았다.

 환자에게 물었다. 혹시 최근 약물 투약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정말 한참 잘 참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한 달 전에 투약을 했다고 했다. 뭘 했냐고 물어보니 펜타닐과 코카인이란다. 그놈의 펜타닐, 코카인. 어휴. 그러나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보호자는 어떤 관계가 물어보니, 마약 중독 카운슬러라고 했다. 그에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가 정말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면서. 나는 어텐딩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어텐딩이 내게 말했다. 

 '네 첫 I&D (농양 절개 및 고름 빼기)를 할 거야.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의외로 어쩌다 영상을 몇 번 돌려본 덕에 대충 할 줄은 알고 있었으나 해 본 적은 없던 나였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열여덟 살의 환자였다. 정말 어리고 앳된 머리가 뽀글뽀글한 환자. 어쩌다가 이렇게 약물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의 왼팔엔 수많은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이두 부분이 시뻘겋게 부어 올라 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아파하는 것이, 고름이 가득 차 커다란 압력이 조직과 신경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뭔 자신감으로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을 건넸다.

 '아마 이거 정말 아플 텐데, 정말로 최대한 안 아프게 열심히 해 볼게. 근데 미안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하는 일이야. 내가 하는 게 싫으면 의사분에게 해 달라고 해도 돼.'

 그는 신기하게도 내가 해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으로 마취제를 주삿바늘로 뽑았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고 얘기하면서 그 시뻘겋게 부어오른 팔에 마취제를 넣었다. 그는 소리를 질렀으나 잘 참고 가만히 있어 주었다. 마취제를 한가득 넣었다.


 한 2분 후, 그래도 그 주변부가 많이 마취된 모양이었다. 1분 후 쿡 찌를 칼로 톡톡 건드려도 피부 표면엔 날카로운 고통이 없다고 했다. 어텐딩이 내게 말했다. 아무리 마취가 된 것 같아도 환부가 엄청나게 깊고 크니, 한 번에 빠르게, 깊이 절단을 하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난 또다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마 진짜 아플 거라, 미리 진짜 미안해. 그렇지만 네가 낫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건 꼭 알아줬으면 해.'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끄덕였다.

 '진짜 미안해 좀만 버텨줘.'

 그 날카로운 칼이 피부를 가르는 촉감은 정말로 이상하다. 아주 탄력 있게, 그러나 부드럽게 살결이 베인다. 소름이 돋으면서도 미묘하게 좋은 감촉이다. 환자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잘 참아 주었다. 날이 깊이 들어가 상처 한가운데까지 닿았다. 날을 빼자마자, 찐득하고 누런 고름이 죽죽 새어 나왔다. 어으 정말 역하고 시원한 이상한 기분이다. 1분가량 꾹꾹 짜내고 나니, 딱 봐도 이두의 사이즈가 달라졌다. 이렇게 많은 양의 고름을 가두고 있었다니, 안 아플래야 안 아플 수가 없었겠다.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어휴.


 간호사가 또 언제 말도 없이 찾아와 상처 드레싱을 해 주고 있었다. 응급실의 가장 멋진 부분 중 하나다. 그 누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혼돈스러운 환경에서 놀라울 정도로 질서와 규칙을 지킨다. 그렇게 환자 하나, 하나가 나름대로의 치료를 받는다.


 잠시 숨을 돌릴 틈이 있어서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 새 벌써 많이 통증이 가셨단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I&D를 하게 해 주어서,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환하게 웃으며, 내가 정말 자기를 위해 신경을 써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제발, 정말 힘든 건 알지만, 조금만 더 노력해 줄 수 있겠냐고. 누구라고 마약을 하고 싶어서 하겠냐만은, 네가 내 정성을 느꼈다면 그만큼 조금 더 마약을 사용하지 않을 노력을 해줄 수 있겠냐고. 이제 열여덟 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나는 그에게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는 펑펑 울었고, 나도 조금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래도 웃으며 응급실을 나섰다. 나는 그 후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7. 

 이러고 나니 또 하루가 끝이다. 밤 열한 시 반이 넘었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어텐딩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앞 라이트, 뒷 라이트, 둘 다 반짝반짝 잘 빛난다. 엑스포지션 자전거길을 타고 산타 모니카에서 집에 오는 길, 여름의 밤공기는 미묘하게 나를 위로해 준다. 돌아오는 길은 조용하고, 살짝 습하고, 아직 따뜻하며, 풀들의 냄새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자전거길 주변으로 여기저기 또 노숙자들이 잠을 청한다. 이들 중 누군가는 또 내일 ER에 찾아오겠지. 이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상황은 다들 제각각이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다만 내가 세금을 내어 이들이 응급실에서 케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이런 환자들이 쌓이고 쌓여 응급의학 의사들이 번아웃에 다다른다는 사실은 참 씁쓸하다. 과연 이것이 해결될 수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8.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녀미에게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고가 날 뻔했다는 이야기도. 그러자 아내가 펑펑 눈물을 흘리곤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 위험하고 무서운 세상, 하루 끝에 무사히 아내와 꼭 끌어안을 수 있는 일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이 과연 더 존재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픔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상상도 못 하던 사고, 혹은 인간이 뒤통수를 세게 친다. 무난한 하루하루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다. 늘 그렇듯 녀미는 따뜻하고, 몽실몽실한 냄새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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