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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Nov 26. 2021

갈 곳 없는 이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엷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 아름다운 것들, 2절

 따뜻하고 예쁜 멜로디에 이리도 마음 시린 가사가 붙었다. 내 기억에 아주 깊이 남아 있는 동요 중 하나다.


 북적거리다 못해 미어터지는 응급실에서 그를 맞이하였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그는 복도에 널브러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간이 침대가 아닌 제대로 된 병실 안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심각하게 비대하고 군데군데 살이 접힌 체구에 새하얀 피부 덕에 더욱 도드라지는 새빨간 코와 광대, 바짝 선 Sternocleidomastoid (목빗근), 아마 COPD(만성폐쇄성폐질환)가 급격히 악화된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어쩌다 오게 되었어요?' 그의 새파란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는 North Dakota(ND)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왔다. 직항으로 무려 여섯 시간이다. 마이클 잭슨과 협업을 한 자신의 곡이 큰 히트를 쳐서, 마이클 잭슨 본인이 자신의 저택, '네버랜드 랜치'를 그에게 내어주기로 했다. 모든 짐 -- 그리고 그의 고양이 두마리 -- 을 미리 계약된 리무진을 통해 보내고, 자기는 몸만 왔다. 집사가 공항으로 마중나올 예정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몇 시간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아, 공항에서 걷기 시작해 만 하루만에 베벌리 힐즈에 도착했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망할 놈의 집사는 찾아오지 않았고, 하필이면 마침 핸드폰까지 잃어버려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경찰들이 다가왔고, 자신의 새로운 맨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 숨이 차고, 너무 오래 걸어서 그런지 발목이 너무 아파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경찰은 앰뷸런스를 불러주었고, 그는 이렇게 응급실로 찾아오게 되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비대한 체구, N95 마스크 너머로도 느껴지는 독한 체취, 먼지 가득한 머리카락, 뜯겨진 손톱, 지저분한 발톱. 신발도, 핸드폰도, 지갑도 없는 그는 그렇게 누워서 숨가쁘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정말 진지하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디까지가 현실과 부합하고, 어디까지가 부합하지 않는 경험인지 정말 혼란스러워져 살짝 멀미가 났다. 그의 세상 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정말 납득되지 않고 당황스러울 뿐이었을 것이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최대한 알고자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원래는 캘리포니아 헤멧(Hemet) 출신이라고 했다. 

 '그 옆에 호수가 정말 아름답죠, '

 라고 대답하자, 어떻게 헤멧을 알고 있냐며 놀라워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클라이밍 장소, 블랙 마운틴 바로 아랫자락 동네가 헤멧이다. 그는 내가 헤멧을 알고 있음에 굉장히 반가워했다. 이를 보아, 아마 이것은 실존하는 그의 경험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쩌다 양봉 아르바이트를 하러 노스 다코타에 찾아갔고, 또 어쩌다 보니 그대로 거기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혹시 그럼 노스 다코타에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놀랍게도 그는 그가 살고 있던 아파트 관리자의 연락처를 외우고 있었다. 부부라고 설명된 그 관리자들은 아마 이 환자의 유일한 세상과의 연결 고리였던 것 같다.




 '뚜루루루' 연결음이 일곱 번쯤 울린 후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던 참에 낮고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사투리가 담긴 말을 건네는 그는 놀랍게도 실제로 이 환자가 살던 아파트의 관리자였다. 환자가 LA에 찾아온 것을 알고 있느냐 물었더니 알고 있었단다. 아무리 말려도, 사회 복지사까지 불러서 말려도 자신은 그 저택에 가야겠다면서 제발 자신을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관리인 부부는 결국 그를 공항에 데려다 주고야 말았다.


 환자가 평소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물었다. 하루에 보드카를 두, 세병씩 마시는, 굉장히 심각한 알콜 중독자라고 했다. 밤이면 밤마다 실존하지 않는 존재와 큰 목소리로 떠들어 이웃들과 매일같이 다퉜다고 했다. 그의 집에는 타이레놀, 알러지 약, 감기약 등등, 보편적으로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들은 전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는 늘 자신의 집에 마약꾼들이 찾아와 비밀스레 거래를 하고 간다며, 자신은 그들을 막기 위해 매일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그의 집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전혀 뜯지 않은 이불, 담요, 옷가지, 신발, 그러나 그는 그 새로운 옷가지들을 걸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집에는 악취가 가득했다. 관리인 부부는 매주 이 사람이 살아 있는지 확인을 하러 그의 집을 찾았다고 했다. 그 때마다 그가 잔뜩 모아둔 옷가지, 그리고 신발들 안에 똥과 오줌을 배설해 놓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냉장고도 잔뜩 썩은 음식들로 가득 차서, 닫히지도 않는 냉동실 문틈으로 다 녹아버린 고기의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다. 자신은 오늘 프렌치 디너를 먹을 것이니, 관리인 더러 이 '필레 미뇽'은 당신이 가져가도 된다고 아주 자비스럽게 베풀기도 했단다. 무지갯빛 곰팡이가 아름답게 핀, 썩어버린 그 고기를 말이다.


 나는 관리인에게 물었다.

 '이 환자가...'

 '......'


 '여보세요?' 수화기 넘어 들려왔다.

 '아 죄송해요. 이 환자가 혹시 치료가 끝나고 나면 노스 다코타로 돌아갈 수 있나요?

 큰 한숨 소리만 들려 왔다.

 '아뇨, 방을 빼고 나갔어요. 그리고 집주인은 절대로 다시 받아줄 생각이 없어요.'




 다시 환자를 찾아갔다.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마이클 잭슨 맨션에 찾아가는 것이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살짝 동요하던 그는 자신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곧 되물었다.

 '네버랜드 랜치에 무슨 일이 있나요?'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어쨌건 마이클 잭슨 저택에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리고 환자분 집 관리인들한테 전화를 해 보니 지금 당장 원래 아파트로 돌아오긴 어렵다고 해요.'


 아주 긴 정적이 흘렀다.


 '그럼, 그럼 난 ...... 어디로 갈 수 있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너는 알고 있나.




 수소문 끝에, recpuerative care center('회복 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2주 정도 지내며 의료적, 정신적 재활을 돕고, 그 이후에 환자가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병원 겸 복지 시설이었다. 그 센터와 우리는 그가 노스 다코타 주에서 사회적 복지 연금을 받고 있는 만큼, 물가도 훨씬 저렴한, 그리고 익숙한 환경의 노스 다코타에 돌아가는 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환자에게 찾아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일단 2주동안 Palmdale(팜데일)에 있는 회복 센터에서 기력을 차리고 나서는, 아무래도 노스다코타고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버랜드 랜치에 연락해서 다시 짐과 고양이를 노스다코타로 부치라고 해야겠네요. 내 불쌍한 고양이들.'


 나는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을 삼켰다. '혹시,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것은 알고 있나요?' 대신 나는 그에게 부질없는 말을 건네었다. '네, 잘 옮겨질 거에요. 돌아가면 꼭 약들 반드시 잘 챙겨 먹어요.'



 

 그는 다음 날 팜데일 회복 센터로 떠났다. 그 다다음날, 나는 아내와 함께 팜데일을 지나쳤다. 네바다 주의 레드락에 클라이밍을 하러, 모처럼 쉬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네버랜드 랜치의 꿈을 꾸고 있을까.


 누구나 '네버랜드'를 꿈꾼다. 나 또한 나이도 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현실 걱정 없이 시시콜콜하게 재밌는 일들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고, 치열함에 길들여지거나 혹은 치열함에 의해 부서지거나,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살면서 이토록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핸드폰도, 이메일도 없는 그는 오로지 자신을 받아들여줄 수 없는 아파트 관리자의 전화번호만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모도, 가족도 없고, 가끔가다가 이야기하는 '아들'의 연락처 또한 모르며, 안다고 해도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위해 자잘하게나마 세금을 내고, 언젠가 혹시나 그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마음을 담아 돌보아 줄 수 있는 것 밖에 없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대체 무엇이 그를 데려갈까. 대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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