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집합 속에서
전시가 끝났다. 허탈함과 해방감이 온몸을 감싼다. 분명 ‘아직도 안 끝났어?’라 말했지만, 막상 끝이 나니 기쁨보다는 슬픔이 크다. 미친 듯이 달려왔던 기나긴 레이스 끝에 보이는 결승점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그 뒤에 있을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일까. 익숙해진 레이스를 끝낸다는 건 꽤나 서글픈 일이었다.
전시 기간 동안 혹사와 가까운 삶을 긴장감으로 버텼다. 전시가 끝난 뒤면 수많은 사람의 축하에 술 한 잔을 기울여야 됐고, 약속은 밤이 깊어져서야 끝이 났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어, 다음 날에 있을 전시 걱정에 다시금 선잠을 청한 삶의 패턴. 어쩌면 몸은 망가져도 진작 망가졌어야 했다.
월요일이 돼서야 전시에 대한 모든 일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풀리는 긴장감에 다시 한번 느껴지는 서글픔. 이는 찾아왔다. 밀려오는 피로감과 긴장감과 함께.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캄캄한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니지 않는 공허함. 그 위로는 살갗을 괴롭히는 차가운 공기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또 천천히 잠식당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하루가 끝났다. 부르튼 입술과 푸석해진 피부에 적잖이 당황한 아침. 처참한 몰골에 놀란 나는 수요일까지 강제 휴식을 부여했다. 열한 시까지 누워 멀뚱히 핸드폰 속 세상에 나를 가뒀다. 커다란 침대 위에서 세 번 정도 자세를 바꾼 뒤에야 하게 된 ‘로그아웃’. 현실로 돌아왔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집을 청소하기로 했다. 방이 두 개로 늘어서인지 청소의 양도 두 배다. 몸은 무겁지만, 어쩌겠어? 해야지라는 생각과 청소기를 돌렸다.
시간이 이상하다. 뭘 했다고 다섯 시가 되었을까. 전시에 사용한 사진들과 받았던 선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때에 맞춰 울리는 세탁기 안 빨래를 탈탈 털어 널었다. 무심하게 방치했던 냉장고 속 식재료를 정리하고, 가볍게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 단지 이게 끝인데 해는 뉘엿뉘엿 지며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역시 집안일은 매일 할 때마다 이상하다.
이사한 집에서 첫 러닝을 하기로 했다. 코스는 내가 처음 제주를 살기 위해 내려온 곳과 관련이 깊다. 천천히 20분간 익숙한 공간을 향해 걸으며 오랜만에 뛰는 것에 대한 적응을 마친 끝에 도착한 익숙한 공간. 나는 그 위에서 추억을 상기했다.
2020년 6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때 그녀에게 나는 “너랑 헤어지면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칠 거야”라고 말했다. 내 절반을 내어주고 온 서울이 미워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으니까. 그게 제주도였다.
참 웃기지. 가장 먼 곳이 고작 제주도라니. 코로나로 인해 제주도가 최선이었지만, 수중에 남은 작은 돈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이 제주도였다. 이 와중에 살아갈 계산이나 하고 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여전히 최악이다. 어쩌면 코로나라는 방패막이가 찌질한 나를 살렸을지도 모른다.
‘용담 해안도로’ 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매니저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작고 소소한 월급과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번 돈으로 매일을 해결했다. 한 달은 지옥 같았다. 과거가 나를 괴롭혀 깊은 외로움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포근함이 있는 본가로 돌아갈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 악착 같이 버티자.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야‘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제주가 보였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와 너른 바다가.
이 아프고 슬픈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루는 게 좋겠다. 아무튼 게스트하우스에서의 6개월이 나를 찾게 했다. 그 기억이, 추억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이 도로 위를 뛰고 있다. 네 명이 함께 머물던 작은 방에서 나를 찾았고, 작은 원룸을 시작으로 복층으로, 그리고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근처의 투룸에서 미래를 꿈꾸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드니 풀리는 긴장감이 다시 조여오기 시작했다. 서글픔이 다른 도전을 향하는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다. 초심은 찾는 게 아니라는데, 이번은 찾아볼까 싶다. 나를 달리게 한 원동력이 여기에 있으니까.
나를 있게 만든 제주에서
너를 잊게 만든 여기에서
달려보려 한다.
2023.0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