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창쌤 May 23. 2024

나도 학폭 교사는 처음이라서 1

학폭 담당 교사의 좌충우돌 학폭 ZERO 도전기

나는 학교폭력 방관자였다.

조용한 모범생 스타일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무난하게 인기 있던 나는 학창 시절, 종종 학급 회장에 당선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능력은 안 되는데 완장 차는 걸 참 좋아했다. 완장이 주는 멋진 모습만 좋아했지, 그 완장이 갖는 책임감에 대해서는 미련하게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무능력한 회장 놈아.”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장이었던 내가 들은 말이다. 반에서 자주 놀림받던 친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력한 회장에게 울분을 쏟아냈다. 나는 얼굴이 시뻘게졌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욱하는 분노와 어이없다는 감정이 느껴졌지만, 마지막에 올라오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가해 학생들을 향해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었고, 피해 학생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었다. 같이 따라서 웃거나 못 본 척, 못 들은 척할 뿐이었다. 내가 찬 완장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완장은 빛나는 게 아니라 무거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진: Unsplash의Thought Catalog


학교폭력 담당 교사라는 완장.

10년 뒤인 2024년, 나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담당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학교폭력 업무는 초, 중, 고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선생님이 피하고 싶어 하는 업무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에 떠밀리듯 그 업무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직접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놀라시는 분들도 계셨고, 후임자를 구했다며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셨으며, 아직 경험이 적은데 담임을 한 번 더 하는 게 어떠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까웠다. 실체 없는 당위의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고등학교 1학년의 나였을까 무능한 회장이라 말하던 그 친구였을까, 아니면 지금 여기의 나였을까. 학교폭력 담당 교사라는 무거운 완장을 차는 것을 통해, 그렇게라도 가슴 깊숙이 박혀있던 죄책감을 씻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더 이상의 무능은 없다. 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증명해야만 했다.


한 걸음씩 차근차근.

아직 개학하기 전인 2월, 학교에 나와 인수인계를 받았다. 전임 선생님으로부터 업무의 흐름과 사건 처리 과정, 경험에 기반한 팁을 배웠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학교폭력 전담기구와 심의위원회라는 핵심 기구의 명칭과 역할도 헷갈리고 그 말이 그 말 같았다. 도움을 얻고자 펼쳐본 교육청 책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알려주긴 했지만 빼곡한 글자들은 나를 지치게 했다. 사건이 터지면 알아서 다 배우게 된다는 전임 선생님의 유쾌한 격려에 기분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학교폭력에 있어서는 무능과 멀어져야만 했다. 기초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덧셈 뺄셈도 안 되는데 빨리 방정식을 풀려고 하니 답답하고 조바심만 났다. 책자를 개학하고 나서 3월 한 달간은 끼고 살았다. 등교하면서, 지하철에서, 용변 보면서까지 책을 놓지 않은 건 꽤 오랜만이었다. 추가로 관련 영상도 찾아보니 머릿속에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직접 업무 흐름도를 그리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텅 비어있던 머리에 학교폭력 지식이 하나둘씩 들어오며 연계 효과를 내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였다.


2주 먼저 온 개학.

학교폭력 담당 교사로서 내 첫 임무는 개학 첫날 6~7교시에 걸쳐 진행되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보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영상으로 진행한다. 학교폭력 예방과 관련된 전문적인 영상이 인터넷상에 많이 있긴 했지만, 내가 직접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인 나도 중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외부 전문가가 나와서 교육하는 영상을 집중해서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우리 학교 선생님이 TV에 나온다면 흥미와 집중도는 훨씬 올라갈 것이었다. 홀로 빈 교실에서 전자칠판에 발표 자료를 띄우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십 번의 NG. 평소에도 말을 종종 더듬는 편인데,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 더 심하게 더듬었다. 결국 미리 써둔 대본을 전부 지웠다. 대본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말하니 순간적으로 기억나지 않을 때 더듬었고 말투도 어색했다. 큰 틀만 대충 잡고 내 경험에 기반해서, 내 언어로, 내 속도로 다시 촬영했다. 훨씬 자연스럽고 재미도 있었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지만 무언가 2% 부족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