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선택을 뜯어 말리고 싶을뿐..
남편의 회사 일로 영국 버밍엄에 거주한 지 벌써 1년째.
벌써 1년이라니!!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어 실력이(영어 실력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수준) 그대로인데!!
정말 시간이 야속했다. 눈물이라도 왕창 쏟으면 나의 억울함이 풀릴까?
눈물을 흘린다고 이 억울한 마음이 풀릴 거라면 난 매일마다 눈물을 쥐어짜서라도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다 해서 갑자기 안 들리던 영어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영어 방언이 터질 일이 없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왜 영어를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잊고 지냈던 까마득한 중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자금은 옹알이할 때부터 영어를 접하지만 무려 20여 년 전은 중학교가 첫 영어의 시작이었다. (정말 옛날 옛적 같군,,)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여렴풋이 생각하는 영어 수준은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어찌나 이 부분을 달달 외웠는지 영. 알. 못인 내가 외국인에게 ‘Hi. How are you? ’ 인사를 받으면
툭 건드리면 군번줄을 줄줄 자동적으로 말하는 훈령병처럼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로봇처럼 자동적으로 툭 튀어나와 버렸다.
정말이지.. 외운 티가 팍팍하는 영어실력에 한숨이 나오지만 이마저도 못했다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을 것이다. (참담하다 정말..ㅠㅠ)
언어라는 영역은 본디 두뇌가 말랑 말랑할 때 배워서 쏙쏙 잘 들어오는데..(우리 아이들만 봐도 언어의 배움의 속도가 다름)
중학생의 두뇌는 초등학생보다는 덜 말랑말랑하니 다른 나라 언어를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심정일지도…. 여하튼, 언어를 배우기 조금 애매한 시기에 처음 배운 영어.
언어에 관심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철저히 문과도 이과도 아닌 예체능 전공이었다.
예체능 중에서도 몸을 사용하는 무용을 전공했었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무용에 반 미쳐 살았던지라
매일마다 무용학원을 가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배우고 끝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몸풀기와 연습을 했었다.
대회가 있는 날은 밤 11시-12시까지 연습을 하고 주말에도 스스로 나가서 연습할 정도로
무용을 너무너무 사랑했던 순수하고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열정이 넘치는 시기를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잠이 부족했고 학교 개근상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신조 때문에 지각을 면하기 위해 반강제로 일찍 일어나야 했다.
온몸을 쑤시고 아프고 한창 클 때라 잠은 더 자야 하는데.. 매일마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 연습 덕분에(?)
나는 늦게 잘 수밖에 없었고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일은 고역과 같았다.
학교 수업을 듣고 싶어도 매일마다 7-8시간의 강도 높은 연습은 실로 어마어마한 강도였다.
어느 정도로 그 강도가 강했냐면.. 학교 끝나면 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없으니 대신 받은 용돈으로 학원을 가기 전,
매일마다 롯데리아 데리버거와 튀김우동을 매일 먹었는데 몸무게는 찌기는커녕 더 빠졌었다. (아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대회가 있을 때는 잠시 안 먹었지만 중학생 그 시절 나에게 유일한 양식이 된 데리버거와 우동 튀김.
이 어마어마한 열량을 다 태우고도 모자랄 만큼 매일마다 나의 몸짓에 남은 지방과 열정을 불태웠었다.
이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는 3년 동안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쯤 겨우 시작할 수 있었기에 무용을 배우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아직도 무용학원 가는 첫날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학원 계단을 딱 밟는 그 순간.
첫사랑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처럼 (그 당시는 첫사랑이 없어서 이 기분을 잘 몰랐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너무나 설레었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도 좋은데.. 억지로 겨우 무용을 허락한 엄마가 언제든지 ‘이렇게 제대로 안 할 거면 그만둬!!’라는 말이 나올까 봐 나는 악착같이 무용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전공친구들 비해 늦게 시작한 편이라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다 보니 무용 시작과 동시에 시작된 중학교 1학년 시절은 나의 몸과 정신은 무용을 배우고 적응하기 바빠 학업을 신경 쓸 기력이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초봄. 갑자기! 불현듯! 영어 공부가 하고 싶어 졌었다. 왜냐고?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무용이 하고 싶었던 것처럼 영어가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수학은 전혀 생각이 안 들었다. 이런 걸 보면 문과와 이과 중 문과 쪽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무용학원을 다녀온 뒤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1주일 한번 시험 보는 영어 단어 10개를 외우기 시작했었다.
중학교 1학년때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지.. 단어가 길면 길수록 나에게 어려웠고 포기도 하고 싶었지만
무용을 처음 시작했던 마음처럼 악착같이 영어 단어를 외웠었다.
물론, 영어 단어 성적은 안 좋았다. 아깝게 철자 1-2개가 틀려서 틀린 단어가 꽤 되었지만
나는 그럴수록 ’ 영어 단어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 하는 마음으로 학구열을 불태우며 더 달달 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선생님이 수업을 하기 전 말씀을 하셨다.
“ 영어 단어 쪽지시험 성적은 좋지 않지만 너무 열심히 한 학생이 있어 칭찬해주고 싶어요. 000 학생입니다.”
살짝 멍 때리고 있던 나는(그 전날 힘들게 무용 연습을 한 게 아닐까?ㅋㅋ) 순간 화들짝 놀랐다.
엥? 나라고? 정말 나라고? 이게 뭔 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말했다.
아무 말 없이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중학교 통틀어서 학업으로 칭찬받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인정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 칭찬을 받으면 열정을 불태우는 스타일이다, 특히 호르몬 분비가 왕성하던 중학교 2학년!!
이때 칭찬은 나를 영어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로 인해 무용 다음으로 영어를 열심히 하게 되었고 계속 그리 했었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현실은 영. 말. 못…..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의지대로 선택적 영어를 안 한 것이다.
처음에는 되든 안 되는 무지 열심히 했다. 물론 쪽지시험을 다 맞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그 자체가 중학교 2학년인 나에게 큰 위안이자 용기가 되었고 기다리는 수업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느 날 영어선생님이 안 나오셨다. 알고 보니 몸이 안 좋으셔서 갑작스레 학교를 그만두신 게 되었고 바로 새로운 영어선생님이 오셨는데…
이 분을 설명하자면.. 지금 나의 영어 실력(?)을 가지게 해 준 장본인이다.
내 기억으론 새로 오신 영어선생님은 임시로 오셨던 것 같다. 암튼 우리 교실로 들어와서 교탁에 서자마자 나를 보시곤
“ 무용하는 애들은 다 까지고 공부를 못해 ”라고 면전에 대놓고 말했었다. 나랑 단둘이 있는 상태에서 말해도 충격적인데..
50여 명 친구들이 다 같이 있는 반에서 대놓고 말하다니… (전교생 600여 명 중 무용전공자는 2명인데, 2명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똑 단발이라 바로 티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그때 너무 충격적이라.. 말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너무 충격받으면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저런 뉘앙스였다.
우리 반 친구들은 내가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지만 너무나도 창피했고 낯 뜨거웠고 화가 났었다.
중2병은 갱년기보다 더 무섭다는 걸 그때 그 선생님도 알았더라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겠지?
너무나 억울했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를 알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아냐고?
내가 까졌는지 안 까졌는지 내가 노는 걸 봤냐고? 내가 놀았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맨날 학교, 학원, 집 밖에 모르고 열심히 사는 나한테 까졌다니!!!
라고 막 퍼붓고 싶었지만 그때는 교권이 강했고 선생님이 무서운 시절이었다.(우리 학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매로 맞고 손으로 뺨 맞아도 항의 못하던 분위기..)
사실 이런 생각도 몇 시간 지난 뒤에나 한 것 같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도끼로 머리를 찍어 맞는듯한 통증과 어지러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좋아서가 아닌 분노에 차오르는!!) 태어나서 처음 느낀 충격적인 감정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욕은 아닌데 심한 욕을 대놓고 들은 정신적 충격이랄까…
이 억울함을 풀 때가 없었던 나는 결국 영어 공부를 안 하기로 스스로에게 선언을 했다. (제발 그르지 마ㅠ 뜯어 말리고 싶다!!)
그래! 내가 까졌다고? 그래서 공부를 못한다고? 그러면 내가 제대로 영어 공부 안 해줄게!!
어린 마음에 이렇게 나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철저하게 영어를 외면했다.
잘못된 선생님의 선입견은 한 학생의 학업을 포기할 만큼 컸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지 100% 그 선생님 탓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너무 억울하니 나의 잘못 50%, 선생님 잘못 50%로 하자)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어도 반대로 더 악착 같이 공부해서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바보처럼 반대를 선택했었다. 나의 선택은 결국 그 선생님 잘못된 선입견을 맞는 선입견으로 더 못 박아주었고
나는 까진 건 아니지만.. 무용하는 애들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옛 감정에 빡 치지만.. 나의 선택에 정말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ㅠㅠ
열받은 중2병 객기는 정말 말릴 수가 없구나….
그 뒤로 나는 영어를 쳐다보기 싫어졌고 그렇게 나는 영어를 선택적으로 안 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