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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Aug 08. 2022

병원선에서

비아나 두 카스텔루(Viana do Castelo)

 염장 대구, 바깔랴우(Bacalhau)가 짠 이유는 눈물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여름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북서쪽 조용한 해변 도시에서 알았다. 때로 어떤 음식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떤 고양된 정서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음식들은 어떤 공통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존해 온 미각 유전자와 같다. 그리고 그 유전자에는 고유의 문화적 배경과 아릿한 상흔이 아로새겨져 있다. 포르투갈의 바깔랴우가 그렇다.      


 바깔랴우는 포르투갈에서 에그타르트만큼이나 흔해 빠진 음식이다. 식당에서는 다양한 레시피로 변주되어 메뉴판의 터줏대감으로 불리고, 마트에서는 커다란 빨래판 같은 크기로 하얗고 꾸덕하게 마른 채 장작처럼 잔뜩 쌓여 있다. 언젠가 포르투갈 친구에게 포르투갈 사람들은 왜 그렇게 대구를 좋아하는 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내 대답에 잠시 망설이더니 엷은 미소를 흘리며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비아나 두 카스텔루에 가봐


 비아나 두 카스텔루는 북서쪽 스페인과의 국경에 인접한 작고 조용한 해변 도시다. 나는 사실 바깔랴우 요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말에 그곳에 가면 나의 편견을 바꿔줄 최고의 바깔랴우 요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나를 기다린 것은 오래전 퇴역해 이제는 노인처럼 항구에 접안해 있는 어떤 거대한 병원선이었다.     

병원선에서 바라본 비아나 두 카스텔루는 조용한 해변마을이다. 멀리 산 위에 산타루치아 생추어리가 보인다.


 이제는 도시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그 역할을 바꾼, 이 거대한 병원선의 좁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이것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식당에는 당시 마셨던 와인을 담은 낡은 오크통들이 줄줄이 놓여있고, 어떤 객실의 작은 서가에는 빛바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엔진룸과 기계실을 지나면 이곳의 백미인 수술실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상처 입은 어부들이 응급 외과 수술을 받았을 것이다. 1930년대 거대한 풍랑과 혹한이 몰아치던 그린란드 바다에서 이 병원선은 대구잡이 선단의 어부들에게 바다 위 육지였다.


배 아래에서는 위급한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국가의 기간산업이었던 대구잡이 원양어선에는 스스로 낚시 한 번 해본 적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배에 올랐고, 가혹한 바다 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병원선 안에서 반복 재생되던 흑백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이 배를 타러 나가는 젊은이와 그 가족들이 항구에서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었다. 대구잡이 원양어선은 그러니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전쟁터였다. 나는 난간을 붙잡은 채 영상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흑백사진이지만 포르투갈 선원들의 미소는 어쩐지 컬러에 가깝다


 병원선은 당시 국가 전체를 떠받치다시피한, 대구잡이 어부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포르투갈의 바깔랴우는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의 최대 먹거리였고, 그만큼이나 까마득한 청춘들의 아련한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언젠가 서구의 어떤 미식가는 음식에 대한 최대의 존경은 침묵과 눈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침묵이 맛에 대한 존경이라면, 눈물은 맛 뒤에 숨겨진 정서에 대한 존경이지 않을까. 어느 여름날, 나는 어쩐지 병원선의 수술실 앞에서 주책맞게 눈물이 터질 것만 같다. 그깟 음식 하나에 이토록 많은 필부들의 슬픔과 한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내 나름대로 커다란 충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비아나 두 카스텔루에서는 바깔랴우 요리가, 전혀 유명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여느 곳에서처럼 말이다.


Viana do ca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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