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보라(Évora)
하얀 말은 원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어느날 마침내 원이 멈췄다.
여행은 흔히 즐거움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여행이 긴 삶의 일부이듯, 여행에도 슬픔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8월의 어느 날, 나는 에보라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뼈예배당을 방문하면서 죽음에 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사실 죽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선으로 빗겨나 있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관한 표현은 직접적이라기보다 간접적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죽었다라기보다 우리는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은유로 표현하는 죽음은 직유보다 훨씬 더 묵직하다.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한 묘사도 우아하고 고귀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가진 슬픔의 이미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아하면서도 슬플 수 있는 죽음에 관한 묘사를 나는 도널드 홀의 에세이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주인공 도널드 홀의 아내 제인이 백혈병으로 죽기 전 남겨둔 시 하나를 도널드 홀이 소개해준다. '양로원에서'라는 제목의 시는 제인의 어머니의 말년을 그리는 내용이었는데, 짤막하게 소개된 시에서는 원을 그리며 달리던 말이 어느 날 멈추는 것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나는 책 속 그 문장들에 조용히 밑줄을 그었다. 일찍이 그렇게 고결한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를 본 적이 없었다.
에보라를 방문한 날은 그해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 더해 자동차의 라디오 뉴스에서는 고온건조한 날씨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산불이 포르투갈 여기저기에 났다는 소식을 다급하게 알리고 있었다. 문자메시지로도 포르투갈 정부의 다급한 산불 조심 경고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산불 피해를 입은 어느 할아버지의 울먹이는 인터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을 화마가 집어삼켰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울음이 잠시 멈춘 사이, 나도,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곧바로 방문한 곳이 에보라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 뼈 예배당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두개골과 뼈들 앞에서 나는 곧바로 할말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이곳 예배당의 가장 유명한 문구인 '여기 우리의 뼈들이 당신의 뼈를 기다린다'는 노골적이고 서늘한 문구 앞에서 내 마음은 이제 산자라기보다 죽은 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문구 앞에서라면 나는 그동안 너무 오만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지었다는 이 뼈 예배당을 둘러보고 나면, 예배당을 지은 그 목적은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죽음만큼 삶을 비추는 거울은 없는 것이다.
하얀 말은 태어나서 힘차게 작은 원을 그리다가 큰 원을 그리며 달려나간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지나며 원이 점점 작아지고, 때가 되면 원은 속절없이 멈추고 점이 되어 사라진다. 오래 전 나의 원과 지금의 원은 그 크기가 분명히 다를 것이고, 나는 그 사실이 이제서야 조금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소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하지만, 원이 작아지는 그 슬픔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았을때는 보통 적지않은 나이를 먹었을 때일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지만, 역시나 그 사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망연자실해진다. 할머니를 땅에 묻던 날, 나는 그것을 절절히 느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이고, 그 누군가는 종국에 내가 된다.
예배당에서 나오자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자동차는 이제 좌석에 앉을 수 없을 만큼 찜통이 되어 있었다.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 에어컨을 켜놓고 한참을 그대로 두었다. 차가 식어가는 동안 인근의 나무 그늘에 잠시 서 있었다. 습도가 거의 없는 유럽의 여름은 그늘 아래에서는 언제나 견딜만했다. 이윽고 차를 타자 에보라의 온도는 이제 40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에보라를 떠나는 차 안에서 어느새 나는 짐짓 눈물인지, 땀인지를 뻘뻘 흘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산불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Év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