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냐스 두 마르(Azenhas do Mar)
오래전, 시를 쓰던 지인은 내게, 아름다움이 어떤 임계치를 넘어가면 아름다움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포르투갈 서쪽 어느 해안마을에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언젠가 신트라를 방문했던 밤에는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수많은 별들이 무한궤도를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밤하늘이 보이는 숙소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주제 사라마구의 '포르투갈 여행'을 읽다가 꾸벅꾸벅 잠이 들기도 했는데, 불현듯 319페이지의 이 문장에서 잠이 깨었다.
모든 길은 신트라로 통한다. 여행자는 이미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Azenhas do Mar와 Praia das Maçãs를 둘러볼 것이다. 그곳에서 먼저 절벽 아래 폭포처럼 떨어지는 집들을 구경한 다음 파도에 씻겨진 모래 해안을 볼 것이다
지명이 아름답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 틀림없다는 것이 여행에 관한 나의 지론이므로 신트라를 방문한 후 우리의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Azenhas do Mar가 되었다. 바다의 물레방아라는 의미를 가진 포르투갈의 Azenhas do Mar는 생각해보면 가장 그러한 곳이다. 신트라에서 차량으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마을은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못해 처연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멀리 오렌지빛을 뿜어내는 석양아래 절벽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집들은 언뜻 보기에 신기루에 가까울 만큼 비현실적인데다 어쩐지 위태로운 그 모습들이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 도착해 커피 한잔을 하며 웨이터에게 물어보니, 이 마을은 포르투갈 7대 마을 중 어촌마을 그룹에서 결선 후보 중 하나였다고 한다. 바로 절벽 위 집들 때문인데, 주제 사라마구는 저 집들을 보고 절벽 아래 폭포처럼 떨어지는 집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밤의 잠을 깨운 것은 사실 그의 위험하고 만화같은 상상력이었다. 나는 그의 표현에 곧바로 매료되었다. 폭포의 물이 떨어지듯, 집이 떨어지는 마을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Azenhas do Mar이다.
커피를 마시고 마을을 거닐다 인심 좋아보이는 촌로를 붙잡고 다짜고짜 지명의 유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무어인들의 점령 이후 마을에는 물레방아가 많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바로 지명이 되었다고 설명해주었다. 단순하고 명료한데, 역사학자같기도 한 근사한 답변에 사실 나는 조금 놀랐는데, 실은 촌로에게 이런 답변까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그에게도 비쳤는지 그는 만족스러운 표졍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던 길을 갔다. 그렇게 마을을 둘러보다가 절벽 마을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건너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카메라의 화각과도 구분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엽서 풍경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곳에 있었다. 우리 가족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늘 입버릇처럼 남는 건 사진이라며 신나해 하면서도 한참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는 비경앞에서 서로 이렇다하게 말이 없었다.
사실 주제 사라마구와 같은 작가뿐만아니라 포르투갈의 유명한 화가들도 이곳에 마술처럼 매료됐고 정착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정확히 무엇에 매료된 걸까.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곰곰이 그런 생각을 했다. 단순히 아름다움이라면 그런 곳은 이곳말고도 포르투갈에서 차고 넘칠 것이다. 아름다움을 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데, 이곳 Azenhas do Mar에서 그것은 어쩌면 처연함같은 것이 아닐까. 마을에 도착해 내가 느낀 것은 단순히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마을에는 아름답지만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처연함, 슬픔 따위의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당신도, 분명 이곳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느낀다면 그 옛날 Azenhas do Mar를 찾은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당신도 여기에서 어떤 정착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Azenhas do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