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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Aug 08. 2022

뒤로 걷기, 상실을 마주하는 법

투이젤루(Tuizelo)

피터는 다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지역 풍습을 눈여겨본다. 장례 조문 행렬이 마을을 지나 교회로 향할 때, 그는 그것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많은 조문객들이 뒤로 걷고 있다. 그것은 슬픔의 표현으로 보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고, 광장을 가로지르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은 슬픔을 곱씹으며 수심에 젖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고 뒤로 걷는다.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 中) 


 마을의 광장 한가운데에 선다. 나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로 걸어 본다. 생각해보니 내겐 더 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없다. 산다는 것은 도미노처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둘 자연스레 떠나가는 것이고, 종국에는 나 역시 쓰러지는 도미노의 핀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미국의 계관시인 도널드 홀의 에세이,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그는 죽음이 주제인 그 에세이를 마지막 작품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듯 2008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투이젤루는 산악자전거 코스의 주요 루트에 있다


 포르투갈 대도시의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이 마을에 대해 묻는다면 십중팔구 거기가 어디냐며 되물을 것 같다. 대낮의 여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조용한 시골 마을 광장에는 볕보다 뜨거운 적막만 가득 차 있다. 이 마을이 생긴 이래, 아마도 내가 이 마을에 처음 온 아시아인이 아닐까. 포르투갈 북쪽, 인적조차 드문 시골마을에 이방인이 뒤로 걷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침입자라도 된 양 조심스레 마을을 빙 둘러본다. 평범한 여행자의 눈에서라면, 볼만한 것은 다시 말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주로 양봉업에 종사하는지 양봉 상자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마을의 광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포르투갈의 북부 도시 브라간사에서 산속으로 삼십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사실 여행지라기보다 종착지에 가깝다. 그래서 이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무엇을 볼 것이라는 불확실한 기대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실망을 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속 주인공 토마스가 목도한 삶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숨을 멈추고 딸꾹질을 하면서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은 채 아이처럼 흐느낀다. 우리는 멋대로인 동물이다. 그게 우리이고, 우리는 우리일뿐 더 나은 무엇이 아니다. 더 숭고한 관계 따윈 없다. 다윈이 태어나기 오래전, 광적이지만 명석했던 한 신부는 아프리카의 외진 섬에서 침팬지 네 마리를 만났다가 대단한 진실과 마주쳤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토마스는 외로움에 짓눌린다.      

  '파이 이야기'로 세계적 작가에 오른, 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아무 관련 없어보이는 세 이야기를 차례대로 들려준다. 1904년 아내와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인해 뒤로 걷기를 하다가 삶의 진실을 찾아 수도 리스본에서 북부 시골마을 투이젤루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남자, 토마스 이야기, 1939년 아내를 잃은 부검의와 그에게 남편의 부검을 의뢰하는 노부인의 환상 이야기, 1981년 아내를 잃은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가 그의 부모의 고향인 투이젤루에서 침팬지 한 마리와 정착하는 이야기. 세 옴니버스들은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이어지고 이야기는 상실을 겪은 인간의 처절한 고독을 울부짖듯 토해낸다. 그리고 그 고통과 치유의 시작이 바로 이 시골 마을, 투이젤루에서 그려지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 마을에 나도 발을 한번 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엇을 보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듣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확신에 확신을 더해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볼 것도 할 것도 없으리라 믿었다. 여행의 동기란 사실 그렇게 막연하고 싱거울 수 있다.   

 

마을의 예배당은 잠겨져 있었는데, 사실 버려져 있었다

 

 마을 어귀 돌담에 낡고 찢어진 스웨터 하나가 버려져 있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마을에서 길에 버려진 옷은 이곳을 폐촌처럼 퇴락한 느낌이 들게 한다. 어쩐지 마을의 교회는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그러니까, 버려져 있고 잠겨 있는 마을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삶이란 마치 닳고 닳은 스웨터같은 것이다. 한 고리 한 고리씩 풀려나가 어느새 손에 남는 것은 놀랍게도 털실 몇 가닥뿐일 것이다. 우리는 억울해 할 것도 없이, 변명할 것도 없이 누구나 그렇게 상실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저 그 상실의 바다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조금씩 하루 또 하루, 일 년 또 일 년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포르투갈 이름없는 시골마을, 투이젤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당연한 진실이었다.                

Tuiz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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