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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영 Apr 12. 2024

가족은 서로의 허락을 구하는 아름다운 구속

일상 에세이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이 있다. 사랑을 하면 서로 약속하고 해야 할 일이 생기는 변화된 일상이 행복하다는 노래 가사이다. 결혼도 아름다운 구속일까?   



       

  지난 주말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교육 장소가 지방인 데다 주말 양일 진행된 교육이라 서울 경기권에서 온 대다수 사람들이 연수원에서 숙박을 했다. 왕복 4시간 거리인 나 또한 숙박을 잠시 생각했지만, 선택은 달랐다. 점심 식사 후 토요일 저녁이라 집까지 가는 길의 교통 체증을 걱정하는 나에게 연수원에서 교육생으로 만난 미선 씨가 물었다. 




“숙박하시면 편할 텐데... 지금이라도 숙박 신청하세요. 내일 아침에 일찍 오려면 힘드시잖아요”

“아~ 저도 숙박을 잠시 고민했는데, 아이가 있어서 아마 저희 남편이 제가 숙박한다면 싫어할 거예요.”

잠시 후, 나의 대답에 이어진 미선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여자들이 결혼하면 왜 남편에게 허락을 받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결혼을 안 해서 그런가? 여자들이 남편에게 허락받는 것을 이해 못 하겠더라고요”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의 귀에 내리 꽂히는 싫어하는 단어 “남편허락” “결혼하면” 이 메아리치듯 공중을 떠다닌다고 느껴졌다.      

  ‘내가 남편 허락을 받는다고?’ 우리 남편이 들으면 크게 웃을 말이다.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나는 그런 고리타분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남편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선택인데 남편의 심정도 이해해 준 거예요. 저는 제가 연수원에서 자는 것보다 아들 얼굴을 더 보고 싶어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미선은 말을 이어갔다.

“결혼하면 여자들 피곤하겠어요. 지난 연수 때 어떤 분도 거제도에서 왔는데, 남편이 어린 아이랑 주말에 어떻게 둘이 있냐며 캠핑카로 온 가족이 연수원에 와서 같이 있더라고요.”

“남편분은 부인을 구속하거나 못 믿어서 같이 온 것이 아니라 겸사겸사 본인이 부인과 같이 있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래요? 결혼하면 여자들이 남편에게 하락을 받고 사는 거 아니에요?”     








  미선 씨와의 짧은 대화에 결혼이 구속인가?라는 질문에 생각해 봤다. 금요일 아침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일찍 들어와’라고 말한다. 금요일 불금을 보내는 남편에게 ‘그만 마시고 일어나서 대리 잡어’라고 재촉하며, 지난해 산 청바지가 있는데도 또 산다는 남편에게 ‘그만 사, 다른 옷을 사면 어때?’라고 말렸다. 


  남편은 내가 마트에서 20만 원 넘게 장을 보면 ‘뭐 산 거야? 이번달은 장 그만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저녁에 된장찌개 끓인다면 ‘하지 마’라고 말한다. 식기세척기를 사면서 사고 싶다고 남편에게 미리 말했으며, 동창들과 3박 4일 여행 갈 때도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는 소소하게 서로 구속하고 허락을 받는 일들이 많다. 내 돈 내가 쓰고, 내 시간 내가 쓴다는데도 서로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구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며 약간의 희생을 감행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허락을 구할 때도 있다. 그래서 피곤하냐고? 전혀 아니다. 강제성 있는 구속이 아닌, 아름다운 구속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희생이 아름다운 구속이라 느낄 때 가족이 유지된다. 결혼해서 좋은 건 언제나 내편인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언제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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