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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수 Sep 06. 2020

스타크래프트만 할 줄 알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30대 남자들에게 스타크래프트가 갖는 의미

코엑스에 처음 가본 것은 2000년 겨울,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코엑스에는 메가웹스테이션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진행되는 스타크래프트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서울 시내 곳곳에 게임전용구장이 생겨났지만, 그 시절에는 전용구장은커녕 프로게이머라는 개념조차 생경했다. 고작 게임을 방송한다고 건물을 새로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방송사는 자사 스튜디오나 메가웹스테이션의 한 켠을 빌려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진행했다. 비록 시작은 조촐했어도 메가웹스테이션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E-스포츠가 태동할 수 있었던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PC방은 그 이름에 걸맞게 식음료가 아닌 컴퓨터 이용시간으로 매출을 올렸다. 그곳에서 나는, 투박한 CRT모니터 앞에 앉아 거북목을 쭉 늘어뜨리고 게임을 즐기곤 했다. 그런 닭장 같은 공간에서 카페모카나 제육덮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메가웹스테이션은 달랐다. PC방과 카페, 그리고 스튜디오가 결합한 공간이었다. 나는 처음 메가웹스테이션을 갔을 때 한쪽에는 카페 테이블이, 다른 한쪽에는 컴퓨터들이 도열해 있는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역시 강남은 강남이구나. 장소도 장소인지라 메가웹스테이션의 PC 사용료는 동네 PC방의 두 배가량 비쌌다. 그래서 나 같은 초등학생이 메가웹스테이션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가격이 20년이 지난 요즘 PC방들의 1시간 요금보다도 비쌌다는 것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코엑스 한 켠에 위치해 있던 메가웹스테이션. 지금 보면 열악하기에 짝이 없지만 이래 봬도 대한민국의 E-sports가 태동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연예인의 데뷔 초부터 팬인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접근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시절 프로게이머들이 그랬다. 투니버스에서 온게임넷으로 체제를 개편한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막 대항해를 시작하던 시기, 선수들은 별도의 게임 부스가 없어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경기를 진행했고 메가웹스테이션 내 빈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의 경기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나는 친구들과 메가웹스테이션을 서성이다가 김대기, 임성춘 같은 선수들을 만나면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받았다. 임요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와 처음 대면하던 날 어떤 경기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입고 있던 옷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흰색 티셔츠에 새빨간 면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저런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니. 나는 그런 인물이 있다면 <은실이>의 빨간양말처럼 촌스러운 모습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임요환은 달랐다. 마치 연예인의 무대 의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그의 하얀 피부와 귀공자풍 외모, 훤칠한 키에는 누더기를 입혀도 멋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임요환 선수님. 저 팬인데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때 나는 임요환에게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의 숫기가 없었다. 마땅한 대체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호칭으로 고민하다가 무난할 것 같은 단어를 채택했다. 그런데 막상 ‘선수님’이라고 내뱉고 보니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님 자를 빼도 됐었을 텐데. 그는 갓 중학교에 입학한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며 사인을 해주었다. 그 순간은 정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평소 그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도 몇 개 꺼냈는데 그는 귀찮아하는 모습 없이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나는 그날로 실력과 외모에 인성까지 갖춘 ‘슬레이어즈 박서’의 더욱 열렬한 팬이 되었다.


나는 비록 임요환을 가장 좋아하긴 했지만 스타리그에 임요환만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타크래프트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스타리그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는 저마다의 캐릭터와 플레이 스타일이 있었다. 그 캐릭터라는 것은 스타리그의 생명력과도 같았다. 운영이든 컨트롤이든 물량이든 선수들은 저마다의 강점을 매 경기 쏟아냈다. 


엄재경, 전용준, 김태형 세 해설자는 그런 선수들에게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며 숨결을 불어넣었다. 특히 엄재경은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탓인지 걸핏하면 중국고사 속 인물에 빗대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마치 살아있는 초한지, 삼국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맛깔 나는 해설 속에서 황제도, 폭군도, 총사령관도 태어날 수 있었다. 그 여운은 방송이 끝나고도 계속돼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퉁퉁퉁퉁”이라든지 “오리 맛은 굉장히 안정적” 같은 유행어들이 파생되었다. 매주 새로 쓰여지는 그 역사를 보기 위해 나는 걸핏하면 친구들을 이끌고 용산에 있던 E-스포츠 스타디움을 찾았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열정이 식은 건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다. 공교롭게도 군대에 있던 사이 그렇게 애청하던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막을 내렸다. 스타크래프트 제작사인 블리자드와의 저작권‧중계권 문제, 승부조작 논란이 엎친 데 덮친 탓이었다. 퇴장은 생각보다 빨랐다. 프로게이머들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군대에 새로운 편제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영화를 누렸던 <온게임넷 스타리그>였는데 말이다. 그 장면들을 보고 있으려니 빛바랜 우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물론 그렇다고 스타크래프트의 의미까지 사라진 건 결코 아니다. 1990년대 후반에 출시된 게임이 10년이 지난 뒤에도 많은 인기를 구가했고, 20년이 흐른 뒤에도 일부나마 소비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굉장한 일이다. 그 사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PC방이 생겨났고, 게임전문방송국도, 새로운 직업군도 만들어졌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이던 시절, (남중남고를 나온 덕분에)학교에서는 거의 모두가 테란이든 저그든 프로토스든 꼭 하나의 주종족은 가지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만 할 줄 안다면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요즘 리그오브레전드가 그렇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 또래에게는 스타크래프트에 견줄 수 없다. 15년은 훌쩍 지난 지금도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다 보면 그 시절 프로게이머들의 근황이 오고 가곤 한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 나와 함께 중‧고등학교를 나온 이들에게 스타크래프트가 갖는 의미는 그런 것이다. 오랜만에 로스트템플에서 테테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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