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수 Sep 04. 2020

슈스케는 무기력한 시대를 보내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슈스케에 열광했던 이유

“혹시 허각이라고 아십니까?”

 “…”

 “그럼 존박은 아십니까?”

 “모릅니다”


국무총리는 깨나 당황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왜 필요한지 답변할 수는 있어도,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는 정책이 왜 자유시장 경제 원칙에 위배 되지 않는 것인지 설명할 준비는 되어 있어도, 허각과 존박이라는 인물에 대해선 들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말했다. 허각이라는 친구는 빽도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오로지 성실함과 타고난 목소리만으로 성공신화를 이뤘노라고. 그가 <슈퍼스타 K2>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건 공정사회를 이루는 대표적 사례이니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시라고. 총리는 머쓱한 표정으로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스물두 살 여름 <슈퍼스타 K>가 막을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성공에 반신반의했다. 연예인은 심사위원일 뿐이고 참가자의 절대다수는 평범한 일반인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니. 검증된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로 꾸려지는 예능 프로그램은 보통 과하면서도 어색하게 흐르게 마련이다. 캐릭터들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여야 하고 익숙한 것에서 오는 호감도 기대할 수 없다. 똑같은 노래를 불러도 이왕이면 연예인들이 부르는 게 더 나을 텐데. 나는 <슈퍼스타 K>가 실험적 작품이었다는 의의만 남기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이 깨지기까지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지원자는 70만 명에 달했고 시청률은 연일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케이블TV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1~2%만 나와도 대성공으로 간주하던 시절, <슈퍼스타 K>는 무려 8%를 넘겼고 이듬해 방영된 <슈퍼스타 K2>는 20%에 이르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출연자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화제가 되었다. 특히 2010년 가을에는 사람이 모인 곳마다 허각과 존박 중 누가 우승을 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각은 타고난 보컬에 스토리도 있다. 아니다. 존박이 <Man in the mirror> 부르는 것 못 봤느냐 등등. 그런 점에 비추어보면 스님이 국무총리에게 허각과 존박을 아시냐고 물어봤던 것은 결코 터무니없는 질문이 아니었다.


허각과 존박의 대결은 20%가 넘는, 케이블 사상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이끌어냈다 ⓒtvN


공교롭게도 내가 <슈퍼스타 K>와 <슈퍼스타 K2>에서 응원했던 사람들은 모두 우승했다. 그것은 우승 상금으로 어머니에게 김치찌개 가게를 차려드릴 것이라던 서인국과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나와서 환풍기 수리공 일을 했던 허각의 삶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다. 고난과 역경을 겪은 일반인이 자기 안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단숨에 스타가 되는 스토리. 그것은 아버지가 소 한 마리 판돈을 훔쳐 집을 나온 뒤 굴지의 기업을 일군 정주영의 일화에 비견될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도 언젠가 불현듯 찾아올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우리에게 <육식의 종말>이나 <노동의 종말>로 익숙한 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에서 그러한 현상이 결코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2000년 IT버블이 붕괴된 미국 사회를 덮친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리얼리티 쇼였다. <아메리칸 아이돌>, <어프렌티스>, <서바이버>, <아메리카 갓 탤런트>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2004년에는 그런 방송들이 무려 170개가 넘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연습생 같은 준비 과정도 특출 난 능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방송에 나와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었다. 재수가 좋으면 스타가 되고 아니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수 많은 시청자들이 TV 속 일반인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내게도 저런 꿈같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쟤보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벤저민 프랭클린이 주장한 근면 성실 따위의 덕목도, 막스 베버가 강조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도 이와 같은 ‘아메리칸 드림’의 광풍을 막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비록 허황된 것일지라도 그 꿈이 건재해야 자신에게도 기회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슈퍼스타 K>의 흥행 이후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위대한 탄생>, <K-POP스타>, <더 보이스 코리아>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뒤를 따랐고 심지어 아나운서를 오디션으로 뽑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그리고 이 모든 열풍의 시작점 앞에는 부동산 폭등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다.


눈을 떠보니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있더라는 이야기. 힘들고 고된 삶이 방송을 나간 이후로 180도 뒤바뀌었다는 이야기. 이것은 <슈퍼스타 K>가 우리에게 심어주었던 꿈과 희망이었다. 우리는 그 흐름에 발맞추어 열광했다. 이제 노력만으로는 더 이상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걸 은연중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든 복권이든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사회. <슈퍼스타 K>는 그런 무기력한 시대를 보내는 한 방법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