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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수 Sep 09. 2020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는 과연 비문일까?

22살 알바생의 서글픈 자화상

스물두 살 여름,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엄마친구 딸’의 소개로 가게 된 방배역 인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면접을 보러 간 날은 많은 비가 쏟아졌다가 멈추고 하늘이 개서 무척 습했다. 공기 중에 수분이 가득 찬 길거리를 걸어가려니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마치 외모에는 관심이 없는 중학생처럼 땀을 줄줄 흘리며 매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꼬락서니에서 반은 깎이고 들어갈 것이다, 라고 예상했다. 면접을 보러 왔다니까 매니저님은 내게 자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라테 같이 생긴 무언가를 투명한 유리컵에 담아주셨다. 김이 살짝 서린 유리컵 안에는 자잘한 얼음들이 채워져 있었다. 마침 창가에 앉아 창밖에서 들어온 햇볕이 유리컵에 드리워졌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순간이었다.


면접은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 경력이나 커피제조법,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질문을 받을 줄 알고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질문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친한 형 동생이 저녁 자리에서 나눌 법한 덕담이 오고 갔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면접이었을 것이다. 어찌나 즐거웠는지 수다를 너무 떨어서 입안의 침이 마를 정도였으니까.


목이 마른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앞에 놓인 음료를 빨대로 쭉 빨아 마셨다. 마시는 그 순간까지만 해도 당연히 라테나 카페모카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맛이 입안에서 퍼져나갔다. 적당히 달콤하고 적당히 씁쓰름했지만 커피는 아니었다. 얼핏 중후한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료가 있었다니. 고종이 처음 가비를 마셨을 때도 이 순간에 비견되지는 못할 것이다. 면접은 떨어지더라도 이 음료의 이름은 꼭 알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만 해도 이 면접은 성공이었다.


음료의 이름은 밀크티였다. 나는 조금 허무했다. 밀크티라서 허무했던 게 아니라 그동안 이렇게 맛있는 밀크티 맛을 모르고 살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때까지 나는 밀크티가 탈지분유 타서 만드는 자판기 우유 맛일 줄 알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사는 밀크티를 메뉴에서 뺐다. 훗날 삿포로에 잠시 살았을 때 마셨던 오후의홍차가 비슷한 맛을 구현하기는 했지만 내가 처음 밀크티를 마시던 순간만큼의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밀크티와의 이별을 잊기 위해 열심히 커피를 만들었다.


요즘은 카페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많은 한국인이 커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커피전문점들이 막 늘어나던 때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 때문에 크고 작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특히 남자 고등학생들은 더운 여름 축구를 끝내고 친구들과 “시원한 거 마시러 가자”며 카페에 가서는 가격이 가장 싼 에스프레소를 시켰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서민정이 하도 카라멜 마끼아또 타령을 했던 탓에 카라멜 마끼아또는 익숙했지만 헤이즐넛이 어떻고 프라푸치노가 어떻고 하는 이름들은 그리스나 러시아 사람 이름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극단적으로 종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두 음료, 아메리카노와 카페모카만 우선 외우고 상황에 맞추어 주문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커피를 만들어보니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 메커니즘만 알면 굉장히 간단했다. 우선 원두를 그대로 추출한 원액은 에스프레소, 거기에 물을 부으면 아메리카노. 물 대신 우유를 부으면 라테. 거기에 시럽을 추가하면 시럽의 종류에 따라 카페모카나 카라멜 마끼아또 혹은 바닐라라테. 가끔 특이한 취향의 고객들이 메뉴에도 없는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주문해서 사람을 당황하게 하긴 했지만 대체로 주문의 범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니저들은 본사에서 객 단가도 체크하기 때문에 되도록 빵이나 케이크도 함께 끼워서 팔 것을 권장했다. 프라푸치노 혹은 블렌디드라고 명명되는 ‘얼음 간 음료’도 많이 팔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게 특히나 귀찮았다. 그런 음료를 만들려면 얼음에 파우더와 시럽, 각종 토핑을 넣어서 갈아야 했고 심지어 그 위에 휘핑크림을 얹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날이 들어있는 통을 일일이 씻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본사 입장에서는 그런 음료를 많이 팔수록 이익이 많이 나겠지만 알바생 입장에서는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고객들이 많을수록 땡큐다.



무엇보다 얼음 간 음료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려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당시 그 음료들의 가격은 5천 원 내외였는데 내 시급은 4천 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수십 잔을 만들어 팔아도 음료 한 잔 못 사 먹는 몸값이라니. 4천 원은 단순히 최저시급이 아니라 스물두 살 청년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학교 축구동아리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신입생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10시간 일하고 2만 5천 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나마 꾸준히 올라준 4천 원에도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나라라 할지라도 이건 정말 너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반년쯤 일하니 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최저시급이 적용되었다. 그때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일찌감치 그다음 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연말까지는 내심 3~400원은 오르려니 기대했는데 110원 찔끔 오른 4,110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김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매장에서 팔던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3300원에서 3600원으로 10% 가까이 상승했다. 이 추세로 가다가는 내 시급이 아메리카노에게도 추월당하겠구나. 내 한 시간 노동의 대가가 아메리카노 앞에서도 무릎을 꿇는다는 것, 그것은 삼전도의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이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주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높임말이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화장실은 오른쪽이십니다”와 같은 것들인데 사람이 아닌 사물에 존칭을 붙이는 것은 비문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틀린 걸 알면서도 불필요한 잡음을 낳고 싶지 않아 고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투철한 서비스 정신, 고객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강조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일종의 알바병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꼭 틀린 것 같지만도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지위는 대개 시장가격으로 결정된다. 내 한 시간 노동의 가치가 음료 한 잔보다 낮다면 사회적으로 그 음료가 내 위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배알이 꼴린 나는 일부러 더 크게 외쳤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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