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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우 Mar 09. 2024

첫번째 컷

사진기를 들다

 문득 아버지께서 선물을 주신 날이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가지고 다니시던 흑백 필름 카메라였는데, 아버지 말로는 그때 청춘의 남은 돈을 다 이 카메라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보기에도 어여쁘고, 때가 끼어도 그게 낭만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는 고급진 카메라였다. 난 의아해 이걸 왜 주시냐고 물어보자 아버지는 그저 "나에겐 도저히 사진을 찍을 여력이 남아있지 않단다."라며 의문없이 받으라 하셨다. 얼떨결에 받은 20살의 생일선물. 그건 내 서랍 안에 3년간 조용히 묵혀져 갔다.

 

 군 전역 후, 아직 대학교에 복학하기 전 할 일이 없던 나는 빈둥거리며 동네를 들쑤시며 다녔다. 술집이란 술집은 다 둘러봤고 여자에게 번호도 물어보았다가 까여도 보았다. 울기도 했고, 친구의 연애에 시기도 했다. 취미라는 게 딱히 없었고 그저 sns를 둘러보는 게 다였다. 전 여자친구의 계정을 몰래 들어가기도 해보다가 술 취해서 연락했다가 차단도 당했다. 그렇게 훌쩍 거리다가 잤다. 그리고 또다시 일어나던 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이사를 가기로 했으니 짐을 치우라고 했다. 그렇게 짐도 쌌다. 알뜰하신 우리 어머니 왈 "쓰지 않는 것은 다 버려라." 그래서 내 쓰레기 봉투는 한가득 했고 중고 거래도 활발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와 같이 마지막 방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선 그 아버지의 카메라를, 낡고 묵은 카메라를 들으셨다. 난 그게 내 방에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거, 팔거야?" 고민을 좀 했다. 팔까? 꽤나 가격이 나가게 생긴 카메라이긴 했다. 내가 쓸 일도 없겠다 싶어 중고 장터에 올릴까 고민을 했다. 찰나, 어머니는 내게 카메라를 쥐어주시고는 "너 요즘 할 일도 없는데 뭐라도 해라. 사진이라도 찍어 봐."라며 말씀하시곤 나머지는 다 들고 나가셨다. 내 방엔 카메라와 나, 그리고 침대와 책상만 남아 있었다.


 이사는 전포의 아파트로 가기로 했다. 난 헌팅 포차가 가까운 전포에 간다길래 신나기만 했고 부모님은 아마 속 썩으셨을 것이다. 자그만한 짐이 든 가방을 들고 아버지의 차에 타 새 집으로 향하는 길, 아버지께서 내게 말했다. "카메라, 쓰고 있니?" 어... 아니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이 없어지셨다. 큰일났다. 어머니는 긴장하셨고 나도 그랬다. 이 신호는 아버지의 짜증의 신호다. 난 곧바로 "아뇨 아뇨, 쓸려고요. 이번에 이사가면 쓸려고 일부러 가져왔죠. 하하." 그러자 아버지는 다시 말을 꺼내시면서 카메라에 대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말씀하셨다. 난 한 귀로 흘러들으며 웃으며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쳤다.


 집에 도착하고 이삿짐을 얼추 풀고 방이 좀 정돈되었을 때, 카메라를 책상 위에 놔두었다. 한 번 웅큼 마음이 들었다. 한 번 써볼까? 아버지의 말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찾은 뒤, 초점을 맞추고 내 침대와 깔끔한 책상, 컴퓨터, 바닥을 한꺼번에 담아보았다. 찰칵. 위이잉.

 필름이 현상될 때까지 어디서 보았듯이 필름을 흔들어보기도 했고 뭐 어쨌든 기다렸다. 그리고 필름이 현상되자 아직 제기능을 하는 것을 증명하는 듯 빛이 확 담긴 내 방이 나왔다. 내 방, 이랬었나? 갑자기 내 방이 낯설게 보이고 카메라의 초점으로 눈이 깜빡거렸다. 적응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묘한 흥분감이, 마치 누드를 본 듯 마냥 흥분감이 들었다. 전율은 시신경을 불태우는 것 마냥 강렬했고 난 곧 한 컷 더 찍었다. 다시 현상되기를 기다렸고 또다른 방의 시선을 보았고 난 다시 흥분해 집안을 쏘다니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게 내 첫번째 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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