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돌아오'지 못한 자의 변명 (TMI 파티)
2020년 8월 31일, 본격적인 브런치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알 수 없을 줄은 몰랐지. 슬프게도 이 브런치를 쓰는 시점은 12월 27일. 심지어 1편의 뒤를 이을 2편이 아닌 전혀 다른 주제의 브런치를 쓰고 있네요. (더더욱 슬프게도, 코로나19는 잠잠해지지 않았고요.)
스타트업은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워라밸에 목숨 걸 것 같은가요?
원티드 광고처럼 업무 중간중간에도 게임 시간이나 가벼운 티-타임을 갖거나
퇴근 후에는 자기개발을 위해 이런저런 강의를 들을 것 같나요?
어딘가엔 저렇게 사는 스타트업 에디터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개부럽다) 적어도 저는 아니었단 말씀. 지난 4개월 동안 일, 정말 원없이 했습니다.
얼마나 일했길래 그러냐고요?
이만큼 일했습니다.
Q. 주작 아님?
A. 팀에 업무 시작이나 중단, 종료 뿐만 아니라 회의나 식사 시간을 공유하는 별도의 채팅방이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 근무가 생활화 되다 보니, 업무 채팅에 상대가 답장이 없을 때 자리로 찾아가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졌잖아요? 업무 채팅이 어려운 상황을 빨리 파악하기 위해 판 채팅방인데 실제로 업무 효율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브런치 소재도 되고요^^
Q. 미기재는 뭔가요?
A. 채팅방에 '업무 종료' 치는 걸 까먹은 날입니다. 평균 낼 때 제외했습니다.
Q. 저녁에 업무 중단 시간이 기네요?
A. 저도 인간인지라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중단이 긴 날은 : 생존 필라테스와 교양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어 시작했던 첼로를 합니다.
중단이 짧은 날은 : 서브웨이 로스트 치킨 샐러드를 먹습니다.
참고로 첼로는 하면 할수록 포도알 색칠하기에 꼼수 부리던 그 어린 날의 모습만 발견하고 있어 오히려 교양을 잃어가는 것 같기도….
Q. 본인이 일을 못하는 거 아닌가요?
A. 12월만 뚝 떼어두고 보자면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프로젝트를 오픈/담당 했습니다. 이런저런 TF 3개에 현재 진행형으로 들어가 있고, 프로모션 1개를 주도적으로 준비해서 거의 끝나가네요. 중간중간 교육이나 교육 매뉴얼 작업도 진행하고, 매주 20~40개의 오프라인 POP 카피도 씁니다. 이슈 터지면 이슈 대응하고 미팅도 하고 강의도 하고 가뭄에 콩 나듯 인터뷰도 하고 그럽니다. 물론 이 모든 것과 별개로 일을 못해서 업무 시간이 긴 편일 수도 있습니다.
Q. 이렇게 일하면 돈 많이 받나요?
A. 원티드에서 찾아본 에디터 연봉은 아래와 같습니다. 저는 신입 시절 떼면 2년 차 에디터고요.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Q. 왜 그만두지 않나요?
A.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재밌습니다. 매일 새 프로젝트를 만날 때마다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게 일하는 게 최고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에디터가 되고 싶습니다.
스타트업 에디터를 꿈꾸는 누군가의 멘탈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나마 남은 생에서 가장 똑똑할 20대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확 늘려두고 싶다면
작년에는 금시초문이던 일을 올해는 전문가 수준으로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싶다면
반복적인 업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 밤이 궁금하고,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지 기대된다면
(퇴근 시간 5분 전에 이슈 터질 수 있음)
워라밸에 목숨 걸고, 업무 중간중간 가벼운 티-타임을 갖거나 자기개발을 위해 이런저런 강의를 들으면서도 자기 할 일 다 하는 멋진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면
(본인이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음. 전 실패했지만 여러분은 가능할 거예요.)
스타트업 에디터처럼 매력적인 직업은 없을 겁니다. 진심이에요.
그럼 진짜로, 조만간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브런치가 '[01] 섬세하되 질척대지 않는 크라우드펀딩의 언어' 2편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 되었다구요? 음… 뭐라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아까 파도에 스치듯 지나갔는데 인터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