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이 Sep 19. 2022

빅데이터, 내 마음의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직장 선배님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젊은 시절부터 반평생을 한 직종에 종사한 후 작년에 정년퇴직을 맞으신 분이다. 안부인사와 함께 은퇴 후 달라진 자신의 삶을 전하셨다. 일이 없는 낯선 일상 속에서 처음 얼마간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오래전에 꿈꿔오던 일을 시작했다며, 자신이 만든 음악을 선보여 주셨다. "듣고 감상평 좀 부탁해." 상기된 목소리에서 은퇴 후 또 다른 삶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는 중후하고 점잖던 평소 그분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경탄과 함께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평범한 우리들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산다. 안락한 의식주와 성공하는 삶이 우선이기에, 나머지 욕망은 속절없이 억눌린 채 '언젠가 먼 훗날'로 밀려난다. 좋은 직업을 향해 학업을 다투고, 정글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에 열중해야 한다. 화제가 되었던 영화 속 장면처럼 곤혹스러운 장애물 넘기의 연속이다. 때로는 (더러워도) 참고, (힘들어도) 이겨내고, (열받아도) 웃어야 한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무사히 퇴직에 골인하는 선배들을 볼 때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우러러 보인다.


 우리 모두는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일찍이 경제적 부를 이루어 젊은 나이에 생업을 은퇴하는, 이른바 파이어족을 꿈꾼다. 현실 속 평범한 우리에게는 로또 당첨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신기루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정년퇴직은 그나마 생업에 파묻혀 사는 직장인이 꿈꿀 수 있는 달콤한 미래다. 흔히 제2의 인생이라 믿는 데에는 그만큼 극적인 삶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속 마음도 들어있다. 환골탈태로 노예 같은 삶의 허물을 벗고, 태초에 잃어버린 날개를 돋궈 벼랑 끝을 훨훨 날아오르고픈  마음.

하지만 은퇴자의 삶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던 전문가일수록 은퇴 후 삶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고 한다. 평소에 건강하던 사람이 퇴직 후 급격하게 노쇠하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는 소식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주어진 길 끝에서 갑작스럽게 놓여났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길을 잃고 헤매는 모양새다. 묶여있던 말은 고삐가 풀려도 광야를 향해 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 굳어진 삶에서 자기 본연의 욕망을 잃어버렸으므로.


몇 년 후에는 나도 정년을 맞는다. 세월 가는 건 싫지만 퇴직은 하고 싶다. 물론 아름다운 제2의 삶을 꿈꾼다. 누구도 쫓기듯 살다가 허무에 빠지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스를 줄 모르고 주어진 길을 따라 걸어온 내게도 본래 나만의 길이 있었을까. 찾을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 우린 욕망과 한 몸이었다. 웃고 울고 먹고 노래하고. 세상은 온통 신비롭고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의 경이로운 눈망울, 글자를 처음 익혔을 때의 기쁨, 입학식 날의 떨림, 첫 데이트 때의 설렘 속에서 내 욕망은 뛰어놀았다. 차가 귀하던 시절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네 바퀴 자동차를 굴리며 세상을 누비는 택시운전사가 너무 멋져 보였다. 하늘 밖에 우주가 있다는 걸 알고 난 후에는 우주를 탐험하는 꿈을 꾸었다.

철이 들며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얌전히 길들여지는 사이, 본연의 욕망이 뛰놀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그만 영영 잃고 말았다. 물질만능 세상을 사는 개인에게 벌어지는 비극이다.


세상은 점점 한 통 속으로 굴러간다. 'AI''데이터'라는 말도 예전에 없던 신조어지만 귀에 익숙한 지 오래다. 사람들 속마음과 생각을 엿보고 취합하여, 우리 미래 사회 전반을 이끌어 갈 첨단 기술이라고 한다. 우리는 점점 더 큰 곳으로, 더 많이, 더 빠르게 모이고 흘러간다. 범람하는 욕망의 소용돌이 합류하는 사이, 정작 고유한 자기 존재를 흘려 보낸다.

비싼 집에서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고 멋진 자동차를 타고 유행하는 패션을 두른 들, 진정한 내 모습은 거기에 없다. 행복은 어디에?


인간은 자기 성장을 지속하는 창조적인 삶에서 행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 허무와 자기혐오의 늪에 빠진다.  가지고도 불행해지고, 빈 손이지만 행복할 수 있는 이유이다. 경쟁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잃어버린 자기만의 욕망,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느라 평생을  바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혹자는 자기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라고 말다. 세상을 향해 잔뜩 충혈된 시선을 멈추고, 마음 속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때 가슴 벅찼던 순간들, 티 없이 맑은 웃음들, 내가 버려둔 욕망이 방치된 그곳, 지금 이 순간'나만의 빅데이터'가 외치는 소리에.



그림 : pixabay.com




작가의 이전글 댁네 냉장고는 안녕하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