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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Apr 18. 2021

내 돋보기,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

새옹지마 인생

몇 가지 최하급인 걸 빼면, 모든 면에서 지겹도록 평균, 보통, 중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나라는 사람이라 믿고 살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는 말은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창땐 제법 천재적이었다. 시력만큼은.

10대를 지나며 나이가 더해질수록 안경에 의지하는 친구들은 하나둘 늘어 가는데, 내 시력은 민망할 정도로 더욱 생생해졌다. 깨알 같은 칠판 글씨를 읽어내리고, 길 건너 또 건너에 솟은 건물 간판을 읽고, 진짜 멀리에 있는 건 어림짐작을 보태어 스르륵 훑었다. 안경알 속에서 핼쑥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던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 의심 없이 속아주며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평소 의기소침한 내가 한껏 으스대는 순간이었다.


탁월한 시력 덕인지 눈썰미도 남달랐다. 딱 한 번만 봐도 귀신같이 이름과 얼굴을 매치해서 기억했다. 웬만한 쌍둥이도 내 눈은 못 속였다. 오히려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나로서는 이상했다. TV 속 배우도 한 번만 보면 죄다 기억했다. 아무리 다른 분장을 하고 나타나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쟤가 누구야?" 하면 "OO도 몰라?" 자신만만해져서, 등장인물에 대한 관객들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그 시절 학급에서는 반장, 부반장 말고도 서기라는 직분이 있었다. 기록 담당인 서기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는 아이들 면면과 번호와 이름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인구밀도로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에서 쉽지만은 않은 과제였다. 별다른 재주 없이 눈썰미만 짱인 내가 딱 제격이었으니, 매번 그 역할을 도맡았다. 딴엔 화려한 시절을 구가했다.

   


이제 반전이다. 인생 새옹지마. 화려한 날은 갔다. 나이가 들자 친구들은 안경을 벗어던졌다. 지나치게 가깝던 초점이 세월과 함께 멀어지다가 급기야 정상 초점에 이른 것이다. 그네들은 찌푸리던 미간을 펴고 초롱한 눈으로 우아한 미소를 짓는다. 나 역시 신세계를 경험한다. 총명하던 초점은 세월 따라 갈지자 횡보를 하며 근시, 난시, 노안이 한꺼번에 몰려와 내 인생에 심술을 놓는 중이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이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고, 글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눈을 치켜뜨거나 가늘게 눈살을 찡그린다. 어느새 고약한 표정에 인사성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와 책 사이엔 돋보기가 끼어들었다.     


"당신의 신체 나이는 00세입니다". 건강검진 결과 거짓 없는 신체나이를 확인받았다. 게다가 제법 위협적인 문구 몇 개는 덤이다. 안과의사도 꼼꼼히 내 상태를 일러준다. 안구 속에 침착한 황반도 딱 나이만큼 끼었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 더 자세한 검진을 받아 보세요.”

뽑기에서 ‘꽝’을 뽑았을 때처럼 허탈한 기분인 건,  혹시나 세월이 나를 조금은 비껴갔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역시나 하는 낭패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간을 앞서가는 몸뚱이가 아니라니 다행이다 위안 삼는다. 한 때 그 잘난 시력을 뽐내던 나도 세월 앞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감각이란 살아있음의 증거이니 유한한 생명체에게 영원할 리 없다.  


생생한 감각은 때로 들뜨고 비약한다. 그때도 10대 때였다. 등굣길에 이따금 눈에 띄던 남학생이 어느 날 내게 흰 쪽지를 쥐어주고는 달아나 버렸다. 아니 내게도 이런 일이!! 쪽지를 받아 쥔 채 어쩔 줄 모르다가, 누가 볼쌔라 새초롬하게 다시 걸음을 떼는 순간의 그 느낌이란. 지구 중력은 갑자기 나를 놓아버렸다. 덥고 습해서 축축 처지는 여름날이었지만, 구름 신발을 신은 듯 내 발걸음은 붕붕 날아올랐다.     

비 내리는 날에 듣는 현악기의 선율은 더 감각적이다. 부드럽고 선명하게 공기를 가르며 음이 지나간 자리엔 눈물 같은 이슬방울이 맺힐 것만 같다. 음과 음 사이로 스치는 쇳소리조차도 더 매혹적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업무에 쫓긴 한 주 끝에 맞은 주말, 나는 모처럼 다정한 이들을 만나러 햇살 좋은 정원 찻집에 앉았다. 카페엔 주말의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향긋한 커피 향을 타고 흐르는 음악과 함께 각종 불협화음이 조화를 부린다. 달그락달그락 그릇이 부딪친다. 커피 기계는 저주파 음으로 웽웽댄다. 출입문은 분주히 삐걱인다. 그에 실려온 바람이 뺨에 닿는다. 재잘재잘 수다와 웃음소리는 쏟아지는 빗방울 파문처럼 경쾌하게 실내를 가득 채운다.     

느낌과 소리, 맛과 향, 풍경과 감촉으로 즐거움을 만끽한다.


암막을 뚫고 생명체로 갓 태어난 순간이 있었다. 그때 한 점에 불과하던 감각은, 사는 동안 점점 넓고 깊게 세계로 뻗는 여행을 나선다. 생명체의 누적된 역사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나를 휩쓸고, 세파에 부유하는 감각은 진위와 가치를 알 수 없는 삶의 파편들에 떠밀려 길을 잃고 신음한다.

감각은 어느새 혼탁해진다. 한 때 비범하던 시력이 초점을 잃어버리듯 세상을 향해 뻗은 내 감각은 점점 지치고 쇠퇴한다. 풍미에 취하던 혀와 코는 무뎌지고,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감촉은 돌덩이처럼 둔탁해진다. 세월은 내 더듬이들을 조금씩 갉아먹는 중이다.


며칠 동안 잃어버린 돋보기를 찾느라 수선을 피웠다. 막상 돋보기는 얌전히 제자리에 있건만. 뿌옇던 황사도 물러갔다. 시야는 다시 선명해졌다.


한결 안도하는 마음으로 수지타산을 맞춰본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외적인 감각을 잃는 만큼 다시 내게로 수렴하는 시간이 된 거라고. 진리를 향하는 마음의 눈과 귀를 맑게 닦고, 사랑과 행복에 각성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하여 초로가 된 어느 날에는, 범람하는 세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삶을 꿰뚫어 통찰하는 '진격의 천리안'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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