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먼지는 어디서 날아와 이리도 쌓이고 또 쌓이는지. 예전과 달리 집안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없고 아침저녁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정적 속에 있을 뿐인데. 어느새 거실 바닥은 물론이고, 책상에도 거울에도 욕실에도 먼지가 내려앉고 묵은 때가 낀다.
마음도 그렇다. 매일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별일 없이 지내는 사이 갖가지 감정과 생각이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잠들었던 걱정 근심이 다시 깨어난다. 단호하던 생각은 의혹으로 탈바꿈한다. 즐거운 기분은 문득 근본 모를 불안으로 얼룩진다. 다잡았던 마음은 이내 다시 뒤척인다. 먼지 낀 거울처럼 마음도 뿌옇게 흐려지면, ‘지금 여기’라는 초점을 잃고 방황한다. 손끝도 생각도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매일 어질러지는 방안처럼 마음도 수시로 혼란스럽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청소할 시간이다. 마지못해 마른걸레를 자루에 연결했다. 뿌연 바닥을 깊고 느리게 쓸고 또 쓴다. 먼지와 함께 상념도 날려 보내리라.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실 바닥을 확인하며 뿌옇던 마음도 투명해지는 걸 상상한다. 흩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는 조급하고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창문을 마주 열고 묵은 공기를 흘려보내며 가슴속 의혹과 불안도 함께 털어낸다. 햇빛과 그늘 밑에 교묘히 숨은 얼룩을 찾아 문지르며, 마음 한구석에 끈적하게 눌어붙은 욕심과 화를 마주한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생활 가치는 내게도 꽤나 매혹적이다. 간소함을 추구하는 삶. 과잉을 걷어내고 여백을 되찾는 생활방식이다. 언뜻 보면 간소함을 실천하는 건 말뜻처럼 참 쉽고 만만할 것 같다. 오래되고 낡은 것, 못 쓰는 것 등등 이것저것 그냥 냅다 버리고 비우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은, 실행의 문턱에서 커다란 착각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무엇 하나 섣불리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갈등이 만만치 않다. 아직 움켜쥐고 싶은 미련과 공간을 비워내야 하는 숙제 사이에서 매번 결단이 필요하다. 그냥 뒀다간 똑같은 문제로 또 고민하게 될 것이고, 과감히 버리고 나서는 '아차' 싶은 후회의 순간을 맞게 될 수 있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다 보면 간소함은커녕 계산은 더 꼬이기 마련이다. 모호한 내 삶의 기준을 들켜버린 셈이다. 간소함의 실천은 마음 정리가 우선이다.
풍요와 편리,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은 소비에 익숙하다. 각종 편리하고 다양한 기계와 설비에 삶을 길들이고 의탁한다. 자동차나 핸드폰은 이제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또 많은 시간과 정성과 비용을 소모해야 한다. 며칠 전에는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 가입을 위해 하루 내내 핸드폰을 붙들고 씨름했다. 이럴 때면 내 삶이 기계 속에 빨려 들어 간 듯 주객이 전도되어 실체가 모호해진다. 비슷한 상황은 점점 더 자주 벌어질 것이다. 세상은 더 빨라지고 나는 더욱 뒤처질 테니.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종종 미래의 사이버 세상이 펼쳐진다.인간의 삶은 과학 문명에 지배당해 부품화 되고 노예로 전락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그런 세상은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풍요롭고 효율적인 삶의 그늘에는 과잉과 결핍으로 뒤섞여 불균형하게 변질된 삶이 있다. 자연과 동떨어진 삶은 다시 우리를 공격하는 파편으로 되돌아와 심신을 병들게 한다. 첨단 문명을 누리는 현대인은 전보다 더 깊은 고독과 소외, 불안과 우울을 앓는다.
간소한 삶이란, 본질을 벗어난 삶의 노폐물 속에 갇힌 본래 나를 찾는 일이 아닐까? 과잉을 걷어내고 여백을 되찾으려는 마음은 본류의 삶을 향한 동물적 회귀 본능과도 같다.
오래전에 청소기를 버렸다. 육중한 무게에 시끄러운 모터 소리, 거추장스러운 외형이 싫었다. 그것이 웽웽거리면 청소할 맛이 뚝 떨어지고 공연히 마음도 번잡스럽게 웽웽대는 것 같았다. 대신 마른 헝겊을 낀 수동식 자루를 택했다. 집안에 먼지가 쌓이고 마음이 번잡해지면 비질을 시작한다. 조용히 차분하게 청소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도 가다듬어지는 것 같다. 절간 너른 마당을 비질하는 수도승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미니멀리즘'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벽에는 아름다운 그림 한 점, 구석에 화초 하나 만을 품은 텅 빈 공간이다.
간소한 마음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묵은 먼지처럼 내려앉은 후회와 자책, 부끄러움들을 털어낸 자리에 즐거운 추억을 담은 그리움 한 폭만 남겨둔다. 안 입는 옷가지처럼 칙칙하게 걸려있는 욕심과 원망을 걷어낸 자리에는 기대와 설렘을 한 다발 묶어 한켠에 꽂는다. 텅 빈 마음에 그리움 한 점, 설렘 한다발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