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호 Mar 06. 2023

크로스핏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3

전 세계 크로스피터들의 축제, 게임즈 오픈에 참여하다

2007년부터 시작된 크로스핏 게임즈는 전 세계 크로스피터들의 축제이자 경연장이다. 'The fittest on Earth'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펼쳐지는 크로스핏 대회인 게임즈는 월드컵, WBC, 전국 체전과는 다르게 생활 체육인부터 전문 선수까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온라인 예선을 통해 참여가 시작되고 점차 강도 높은 동작들이 요구되며, 상위 성적을 기록한 선수들만이 다음 시합 진출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남, 여 각각 1명의 최종 우승자만이 지구에서 가장 Fit 한 사람의 칭호를 얻는다. (Fittest는 '가장 센'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나와 같은 생활 체육인에게는 대회 참여를 통해 박스에서 몇 등인지부터 한국, 아시아, 전 세계에서는 몇 등인지까지 알 수 있는 점이 재밌고(등수는 다소 재미가 떨어지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참가비까지 내가면서 왜 굳이 그런 힘든 과정을 겪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크로스핏을 하는 사람이라면 매년 이 시기에 서로의 근황을 '오픈*에 참여했니?'라고 묻기 때문에 20달러와 작은 결심만 선다면 오히려 등록하는 편이 신간 편할 수 도 있다.


게임즈는 '예선 - 쿼터 파이널(준준결승) - 세미 파이널(준결승) - 게임즈(결승)' 단계를 거쳐 우승자를 뽑는데, 가장 처음 치러지는 예선을 오픈이라고 한다.


선수의 정확한 동작 수행여부와 개수를 측정하는 사람을 저지(Judgement)라고 한다. (크로스핏 공식 홈페이지)


크로스핏을 처음 시작한 20년 6월 이후 21년, 22년 모두 크로스핏에 대한 본격적인 열정이 시작되지 않아 이번 23년 게임즈 오픈이 나의 첫 참여가 되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이번 오픈 접수를 알리는 문구를 보자마자 등록했고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접수비를 내고 이를 인스타그램에 인증했다. 오픈 시작 3달 전에 얼리버드 접수를 했기에 분명 충분한 준비 기간이 될 줄 알았지만 그저 3초 같은 3 개월일 뿐이었다.

왜 그동안은 참여하지 않다가 이번 23년 게임즈 오픈은 망설임 없이 참여했을까? 스스로도 궁금했다.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지 않았을까.


첫 째, 참여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크로스핏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박스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일정을 조정할 만큼 이 매력에 빠져있으니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축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연료를 넣어주듯 오픈에 참여하며 스스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고 싶었다. 아마 이는 크로스핏이 아닌 다른 운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너라면 국내에서 열리는 유명 마라톤 대회가 있고, 테니스, 족구, 농구 등 다양한 종목의 리그와 대회가 있는 이유가 그렇듯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약간의 갈증을 원하고 있다.   

둘째, 완벽히 준비된 이후 참여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준비가 안 돼서'는 작년의 나를 포함해서 대회 참여를 망설이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데 나 역시 '올해는 마침내 준비돼서'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미루다 보면 다음 오픈 때는 부담감도 함께 늘어있을 것이고 이는 다시 미루기 위한 변명의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각자의 준비상태는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얼마큼 잘해야 준비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오픈에 등록하지 않으면 나 또한 오픈에 등록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반대로 나보다 서툰 실력자가 오픈에 등록했다면 달려가서 당장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게임즈 오픈은 지원서만이 있을 뿐이다. 합격률 100%의 지원서.

마지막으로, 대회를 통해 성장을 하고 싶었다. 수십 가지의 동작이 요구되는 만큼 이 모두를 잘하기가 매우 어렵다. 시간과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으니 크로스피터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거나 기피하는 동작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지구력을 요하는 동작이나 체조 동작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끼지만 역도와 같은 리프팅 동작은 꽤 오랜 기간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지금 역도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발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이상 이를 기피하지 않을 만큼의 상황이 주어져야 하는데 대회가 이 점을 도와주리라 믿었다. 3자가 보면 수동적인 요구이지만 나로서는 꽤나 적극적인 요청인 셈이다.        

이번 오픈에는 덤벨 동작이 나오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크로스핏 공식 홈페이지)

오픈은 약 3주 동안 진행됐다. 총 3개의 와드가 1주일 간격을 두고 공개됐다. 한국시간으로 금요일 새벽 5시에 공개됐는데 누군가는 밤을 지새우고 와드를 확인하고 나와 같은 누군가는 일어나서 '음 이거군'하며 졸린 눈을 비비곤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참여자가 각자 준비된 만큼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내가 옆에서 보고 응원했던 모두가 평소보다 훨씬 더 열심히 몰입하고 매번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다.(알고 있듯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계에 부딪혀야 한다.) 같은 와드를 두 번, 세 번 측정하며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았다. 그들의 불꽃이 내게도 옮겨 붙어 서서히 내 안의 무언가도 함께 활활 타들어가는 느낌에 기분 좋은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나 역시 3개의 와드를 모두 2번씩 측정했고, 다행히 2번째 측정 기록이 처음보다 좋았다. 내 목표였던 오픈완주를 무사히 해냈다. 오픈 시작 주에 어깨염증 때문에 치료와 측정을 병행했는데 잘 버텨준 어깨가 고마웠다. 오픈이 끝났으니 당분간 치료에 전념하면서 이번에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결의를 다지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조급함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23년 오픈을 되돌아보며 크로스피터들은 다들 어떤 생각을 할까.

이전보다 성장한 자신에 만족한 이들, 자신의 기록에 실망하거나 만족하지 않은 피터들 모두 내년 축제에서 건강히 다시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나는 아마도 뛰고, 들고, 매달리고, 달리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계속해서 좋아할 것이다.

내년 리더보드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4년 오픈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Athlete ready?  

작가의 이전글 크로스핏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