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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Oct 17. 2023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라 마르(La mar)를 향해

고전은 시대마다 다르게 읽힌다고 하는데 독서라는 항해에 이번 『노인과 바다』와의 만남은 2~3번째쯤 되는 듯하다. 내가 던지는 낚싯대에는 매번 다른 미끼가 걸려있는지 건져 올라오는 것은 항상 다른데, 3년 전에는 '삶에 대한 투지와 열망'이 건져 올려졌다. 당시 반복되는 일상과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지쳐있었는데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두 문장이 내게 주는 힘은 강렬했다. 단순한 메시지가 내 안에서 깊고 명징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경험은 언제나 소중하기 때문에 마침 새해 첫 책으로 『노인과 바다』를 고른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뿌듯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는 그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으로 주저 없이 『노인과 바다』를 골랐다. 때문에 이번에도 늘 그렇듯 고전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 어떤 감상이 나의 작살을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노인과 바다』는 '한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민음사 작품해설에 따르면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1940년에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이후 약 10년 만에 출간한 대표작이다. 훌륭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생에 마지막 작품이 되어 작가로서 '백조의 울음(백조는 일생 동안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울고 죽는다)'과 같다고 일컫는다. 이 점은 나에게 산티아고가 고기를 잡지 못한 84일째가 경과된 시점에 잡아 올린 청새치와 결이 같아 보인다. 어부로써 84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는 것은 직업으로서의 수명이 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요즘 시대에 비유해 보면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자영업자가 3달여 동안 단 한 명의 손님을 받지 못한 것만큼이나 참담한 상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는 주위의 조롱과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티아고가 바다를 나가듯 작업실에서 글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남몰래 꿋꿋이 써 내려간 작품이 출판되지 못했거나 혹은 혹평속에 사그라들었을지라도 헤밍웨이는 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써 내려간 『노인과 바다』는 평생을 바친 글쓰기 그 과정 자체라고 보이며 이를 바다와 낚시를 통해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1961)

오랜 기간 아무 수확을 거두지 못한 산티아고가 드디어 마주하게 된 청새치는 그 크기가 대단해서 단번에 잡을 수 없다. 혼자서 그 물고기를 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청새치를 3일 만에 죽이는 데 성공한다. 작가가 이야기의 뼈대를 완성하거나 작품의 초고를 마친 상태가 이쯤이지 않을까. 『노인과 바다』에서는 3일이지만 실제로 이 과정은 몇 달이나 몇 년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고기를 죽인 산티아고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노예처럼 일을 해야 한다며 청새치를 배에 고정시킨 뒤 육지로 향한다. 이 모습은 수많은 퇴고를 거치고 출간(미지의 바다에서 선명한 육지로)으로 향하는 작업들처럼 느껴진다.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수없이 많은 인내와 고통이 요구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창작의 과정 속에서 창대했던 시작과는 다르게 글의 끝으로 갈수록 작품성이 떨어지거나 본래의 방향을 잃는 듯하는 일은 바다에서 상어 떼의 습격을 통해 서서히 그 모습을 잃어가는 청새치와 닮았다.


생사를 오가는 과정을 견디고 육지로 도착한 산티아고는 자신에게 청새치의 앙상한 뼈만 남았음을 알고도 초연하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혼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독자)이 자신이 잡은 청새치의 남은 뼈를 보고 그가 위대한 어부(작가)였을 것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며 그는 사자꿈을 꾼다. 결과에 실망하여 더 이상 어부를 그만두어야겠다거나 체념하여 포기하는 일 따위는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니 '산티아고는 다음 날 일어나 다시 바다로 향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거뜬히 일어나 새로운 항해를 나갔을지 영원한 휴식을 위한 여정을 떠났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산티아고가 망망대해에서 청새치와 상어 떼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사실은 마놀린도 모른다. 헤밍웨이가 보여준 처음이자 마지막 울음을 옆에서 듣고 본 사람은 우리(독자)가 유일하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 많은 힘과 영감을 얻었으니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이를 갚는 일은 작품을 통해 이어받은 산티아고(헤밍웨이)의 생(生)의 의지를 나의 방식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가 잡지 못한 더욱 거대한 청새치가 바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저곳은 위대한 어부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방식으로 노를 젓는다. 라 마르(La mar)를 향해.

오늘 밤엔 사자꿈을 꾸고 싶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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