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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Nov 26. 2023

크로스핏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6

애증의 동작(2) 피스톨(Pistol)

애증의 동작 두 번째는 피스톨(Pistol), 한 발 스쿼트(Single leg squat)라고도 불리는 동작이다. 말 그대로 스쿼트를 한 발로 하면 되는 동작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이 단순한 동작을 크로스핏을 시작한 이래(20년 6월) 지금까지 수행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발목이 유연하지 못하니 어쩌면 영원히 할 수 없는 동작이라고 굳게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와드에 피스톨이 나오는 날을 제외하고는(이상하게 내가 싫어하는 동작은 왜 이렇게 와드에 자주 나올까).  

한 발로 앉았다가 일어나면 되는 참으로 간단한 동작


2015년 나는 우측 발목 인대 수술을 받았다. 자주 접질리며 인대 손상이 심해져 철심과 인공 인대를 심었다. 이후 구기종목이나 다른 사람과 부딪칠 수 있는 운동은 거의 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웨이트를 시작하고 지금의 크로스핏까지 이어졌다. 웨이트를 할 때까지만 해도 발목 유연성이 부족해서 크게 불편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크로스핏은 달랐다. 다양한 체조 동작과 역도 훈련 등에서 유연함은 어쩌면 힘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대체로 좋은 자세가 나오는 사람들은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관절, 발목, 손목과 햄스트링 모두 유연하면 훨씬 부드럽고 안정된 자세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크로스핏 수업은 다른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50분의 수업시간 중 10분은 그날 훈련에 주로 쓰이는 부위의 스트레칭과 웜업을 한다. 몸이 뻣뻣한 사람은 이미 여기서부터 이마에 땀이 맺힌다(때론 숨이 헉헉 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이 스트레칭이 귀찮아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몇 번의 잔부상 이후에는 수업 전 따로 개인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잔부상으로 고생했던 어깨를 주로 풀어주는데 그치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그러다 와드에 피스톨이 나온 어느 날 코치님이 날 보며 의아하게 물어보았다(크로스피터라면 내가 안 되는 동작을 수행할 때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코치님의 그림자만 봐도 어떤 질문을 할지 알아차리게 되는 직감을 가지게 된다).

"왜 아직 피스톨이 안되시나요?" 

"아 저는 발목이 뻣뻣해서요"

"그럼 발목이랑 종아리 스트레칭 해보셨나요?"

"...(아니요)"

크로스핏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만큼의 동작을 수행한다. 피스톨이 잘 안 되면 스테이션을 잡고 하면 된다. 편하다.

그날 이후 매일 종아리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2년 6개월 동안 안되던 동작이 스트레칭 좀 한다고 될까. 3일째 되는 날 어설프게 피스톨이 되길래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맙소사. 그동안 안 된다고 생각해 왔던 자신에게 화부터 났다. 왜 진작 스트레칭해 볼 생각을 못했을까. 왜 안 된다고만 생각했을까. 왜 코치님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못했을까.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2주 정도 스트레칭과 꾸준한 연습을 하니 이제 주변 사물을 잡지 않고도 스스로 앉았다가 일어설 수 있었다. 웃음이 났다. 헛웃음. 창피함과 부끄러움의 헛웃음.


내가 벽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알고 보니 문이었다.
다음 단계로 향하는 문을 보고도 이건 벽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왔다.
문을 열지 못할까 봐 겁이 나 벽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곤 그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나는 새로운 문 앞에 서있다.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믿어온 수많은 문들을 바로 보고 서있다. 다음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얼마나 많은 좌절이 요구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벽안에 갇힌 채 사는 것보다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훈련이다. 훈련은 대화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무엇이 두려운지.

이제 대답을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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